유엔 보증 요구하다 한발 물러서
지난 2일 아프간 정부 협상단 대표가 사퇴한 뒤 인질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한국 정부와 탈레반의 대면협상이 10일 밤(한국시간)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한국 정부와 탈레반은 그간 하루 1∼2차례 전화접촉을 하며 대면협상을 위한 물밑작업을 벌였지만 장소 문제를 둘러싸고 탈레반이 `유엔이 안전을 보증해야 한다'는 요구를 고집해 시간을 끌어왔다.
탈레반은 그동안 탈레반 장악지역에서 회담을 하거나 다른 장소라면 유엔의 안전보증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해왔다.
대면협상이 탈레반 장악지역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결국 첫 대면협상은 탈레반은 안전문제로 거부했던 `적진'인 가즈니주의 주도 가즈니시티에서 이뤄졌음은 물론 그들은 자신의 고집대로 `적진에서의 회담시 유엔의 안전보증'도 얻어내지 못했다.
인질 21명의 생사를 좌우하는 탓에 사실상 협상테이블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탈레반이 대면협상의 장소와 조건 모두 양보한 것은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록 이날 첫 협상에서 "우리의 요구(탈레반 수감자 8명 석방)는 변하지 않았다"고 못박았지만 납치 사상 최대 규모의 인질을 3주 이상 억류하면서 탈레반 자신도 부담이 점점 커져 갔던 것으로 보인다.
인질의 대부분이 여성(16명)인 점도 탈레반에겐 짐이 됐을 가능성도 높다.
약을 처방해 호전됐다고는 했지만 이들의 건강이 점점 약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고 특히 여성을 납치했다는 도덕적ㆍ종교적 비난은 탈레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 초기 인질 2명을 살해하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던 탈레반이 최근 연합뉴스 등을 통해 여성 인질 석방의 다양한 옵션을 슬슬 내민 것도 이런 부담과 내적인 갈등의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인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탈레반 지도부와 일선 책임자 사이의 내분도 주의해서 관찰해 볼 대목이다.
한국인 납치를 주도한 것으로 지목되는 물라 압둘라 잔 가즈니주 탈레반 조직 부사령관에게 탈레반 지도부가 강력한 경고를 했기 때문이다.
납치를 주도했긴 했지만 그가 마치 탈레반을 대표하는 것처럼 대외에 나서자 탈레반 지도부가 제동을 건 것이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압둘라 잔은 일개 평범한 전사일 뿐"이라고 그를 깎아 내리며 "그는 인질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없고 지도부의 신임을 잃어 대면협상 대표에서도 빠졌다"고 말했다.
20명이 넘는 대규모 납치와 억류가 장기화하면서 하부 조직에서 언론 노출 등 돌출행동이 잦아지자 조직 안정 차원에서라도 탈레반 지도부도 이 사태를 서둘러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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