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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석방 인질 대표 “물의 일으켜 국민들께 죄송”

등록 2007-08-31 17:57수정 2007-08-31 21:34

기자회견중인 유경식,서명화씨 = 29일 석방된 유경식,서명화씨가 3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카불=연합뉴스)
기자회견중인 유경식,서명화씨 = 29일 석방된 유경식,서명화씨가 3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카불=연합뉴스)
카불서 기자회견…“납치 직후 탈레반이 전원 살해위협”
“금식기도를 단식으로 여긴듯…탈레반이 시켜 아프다고 했다”
탈레반에 납치됐다가 석방된 유경식(55) 씨는 31일 "큰 물의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잠을 못이뤘다"며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29일 풀려난 유 씨는 이날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의 세레나 호텔에서 한국인 인질 대표자격으로 서명화(29) 씨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고, 정부가 많이 타격을 입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서 씨는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염려해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유 씨는 지난 7월19일 발생한 납치상황에 대해 "낮에는 안전하다고 해서 카불에서 아침에 출발했다"며 "전세버스 운전사가 아는 사람이라면서 현지인 2명을 태워 앞에 앉혔는데 20~30분 후 이들이 총을 발포하면서 차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후 무장한 탈레반 2명이 버스에 올라타 한국인을 하차시킨 뒤 승합차로 나눠 옮겼고, 이 과정에서 고(故) 배형규 목사는 실신했다고 유 씨는 설명했다.

유 씨는 "납치 직후 탈레반은 자신들이 사복 경찰이고, 알-카에다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인질을 전체 집합시켜서 일렬로 세운 뒤 기관총과 소총으로 위협하면서 자신들이 알-카에다라고 말한 뒤 돌변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이어 "(그 탈레반이) 또 총을 쏘는 흉내를 하면서 `너희들 잘못하면 이렇게 한다'고 위협했다"며 "(인질들이) 패닉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인질생활과 관련, "기운이 없어서 하루종일 잠자고, 다시 잤다"며 "사태 초반에 빨리 구출해 달라고 금식기도를 했는데, 사흘을 안먹으니 탈레반이 보기에 단식으로 보여진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일문일답] 대표 “국민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6주간의 억류끝에 29일과 30일 전격 석방된 한국인 피랍 일행 19명 중 유경식(55), 서명화(여ㆍ29) 씨는 31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너무 죄송하고 정부와 모든 국민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질 19명 중 대표로 3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시내의 세레나 호텔에서 처음 국내 언론과 기자회견을 갖고 납치 상황과 건강상태, 심경 등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다음은 두 사람과 한 일문일답.

--건강 상태와 심경을 말해 달라.

▲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아프다. 잠을 잘 못잤다. 여기 온 날은 와서 나쁜 소식을 확인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석방 전엔 몰랐었는데 너무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리고 정부 관계자들이 애를 많이 쓰시고 미군이나 정부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타격을 많이 입었다. 그것을 알고 기뻐할 수도 없었다.

처음엔 23명 모두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와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저희 팀원 7명이 못 왔다. 그래서 그사람들이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3명은 소식을 들었지만 4명은 생사가 불명이라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어 도저히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고생 이런거 보다도 너무 큰 정말 물의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잠을 못이뤘다.(유경식. 이하 유)

▲ 잡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몸이 쑤시고 잠이 안오고 기력이 없고 설사하는 증세도 있지만 잡힐 때 보다는 덜하다.

전반적으로 당장 치료 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고 비단 저희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42~43일 간이나 염려해 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다.(서명화. 이하 서)

--납치 당시를 설명해 달라.

▲ 19일 북부 마자리 샤리프에서 칸다하르로 갔다. 밤엔 위험하지만 낮에 안전하다고 해 안전할 때 가려고 밤늦게 출발했다. 카불에서 아침에 도착해서 한국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먹고 버스 운전사가 수술을 받는다고 했다(서)

▲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운전사 믿을 만하니까. 바꿔 타라고 해서 칸다하르로 갔다. 가즈니주를 지나면서 운전사가 아는 사람인 현지인 2명을 태웠다. 모르는 사람 태우냐고 했더니 가면서 내려주면 된다고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두 사람 태운 뒤 20~30분 가다가 총소리가 났다. 나는 뒤에 앉았는데 앞에서 앉은 사람이 총을 겨누면서 정지 수신호를 했는데 운전사가 무시하니까 발포했다. 운전사가 정지를 했고 정지를 하니 탈레반이 차를 옆으로 빼라면서 차 바퀴에 한발을 쐈다. 차 안으로 무장한 2명이 올라와 운전사를 구타한 거 같고 전부 내리라고 했다.

배 목사님이 실신하셨다. 납치자들이 저하고 제창희 씨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10분 정도 질주했다. 마을 사이로 비포장도로를 가서 어떤 마을에 나무 밑에 높은 곳에 뚱뚱한 보스가 앉아있고 옆엔 RPG 기관총 거치해놓고 데리고 올라가서 홍차를 마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서 왔는지 뭐하는 사람인지. 의사냐고 물었다. 의사는 아니다라고 대답했고 무슬림이냐고 물어 아니라고 답했다. 서툰 영어로 말했다.(유)

--선교나 종교 이야기는 없었나

▲ 없었고 목적 이런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우리도 현지어를 모르고 그 사람들이 영어를 겨우 하는 상태에서 앉아 있는데 우리 뒤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승합차로 두 차례에 나눠 회당 안에 들어가라고 했다. AK 소총 무장한 사람들 10여명이 RPG로 사람들을 집어넣었다. 그 회당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갖고 있던 핸드캐리용 짐 배낭도 몰아넣고.(몸과 소지품을) 수색하면서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회수했다.

왜 그러냐고 다리어 할 수 있는 사람이 물었다.

자기들은 정부의 사복 경찰인데 너희들 알 카에다로부터 보호하려고 임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돌려줄테니 걱정 말라면서 노트북 1대. 카메라, 캠코더, 휴대전화 등을 가방 2개에 집어 넣고 갈 때 돌려주겠다면서 열쇠를 채웠다.(유)

--억류 상황은

▲ 내가 여기 왔을 때 3~4명씩 5팀을 분산했다. 각각 달리 움직였다. 우리는 민가를 주로 돌아다니면서 12번을 옮겼다. 주로 야간에 달이 없을때 이동 오토바이에 태워서 헤드라이트를 끄고 불빛 신호 주면서 갔다. 도보로 이동한 적도 몇번 있다.

초창기엔 한꺼번에 이동한 적이 있었는데 경운기 짐칸에 한번에 짐짝처럼 태우고 비포장도로로 달빛 없는 곳으로 데려 갔다. 6일쯤 지난 뒤 분산됐다. 나흘 밤을 자고 4박5일만에 분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11명이 나눠지고 12명은 그 다음에 6명으로 나뉘고 다시 3~4명씩 나눠졌다. 우리는 11명이 있는데 인질과 교환한다 하면서 저를 데리고 가다가 차가 문제가 생기니 한밤 자고 간다 그랬다.

그 다음날 아침에 나머지 12명(배 목사등)과 합류하는 데 자리가 없다 4사람만 타라면서 나중에 만나는 것 맞다고 했다. 나이어린 여성 2명과 제창희 송병우 씨 등 2명 해서 4명이 1개조로 먼저가라 했는데 그 뒤로 어젯 밤까지 소식을 몰랐다. 오리무중이었다. 이 사람들이 남자는 죽인다는 걸 듣고 매우 애를 많이 먹었다. 나머지 7명이 3~4명으로 나눠서 그저께까지 따로 있었다.(유)

--다른 인질 소식은 몰랐나.

▲석방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배 목사는 살해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12명이 돌아다니는 중간에 우리를 감금하는 집 주인이 탈레반인데 낮엔 잠궈 놓고 농사일을 하고 밤엔 소총 감시를 한다. 그 사람이 한국인 여자 2명이 아파서 돌아간다며 라디오 뉴스를 보란 듯이 선심 쓰듯 보내주는 것처럼 과시하는 것 같았다. 영어 방송하는 것을 들려주는데 중국에서 하는 영어 방송인데 1분동안 들었다.

21명중에 여자 2명이 석방됐다. 23명 중 2명은 살해된 것으로 뉴스를 들었다. 가슴철렁했지만 내색을 못했다.충격 받을까 봐 속으로만 알고 있었다.

숨기고 자리를 옮기면서 탈레반이 2명 있을 때 23명 다 안전하냐고 물어봤다.

자기들끼리 얘기하는데 얼핏 느낌으로 다 살아있는 척 하라는 것처럼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희생자가 누군지는 몰랐고 혹시 젊은 사람들 가운데 반항을 하다가 탈주한 것으로 오해해 사살하지 않았을까 걱정을 했다.

이 사람들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면서 인질교환 하자며 감금하고, 협상이 되나보다 하면 눈을 가린 적이 부지기수였는데 역정보를 흘려서 이용한 경우도 많았다.(유)

--육성통화는 어떻게 된 것인가.

▲ 다른 팀에서 그사람들이 안면이 있는 곳에다 노출한 것 같다. 너희가 아프다고 해야 구출해 준다고 탈레반이 말을 시키고 안하면 안되게끔 시키는 것 같았다.(유)

--음식 등은 어땠나.

▲ 갑상선 수술로 하루에 호르몬제 2알을 먹어야 하는데. 납치 되고 나서 하루 2알을 1알로 줄였지만 1주일이 지나서 떨어졌다. 손짓 발짓으로 부탁을 했다. 하루 2알씩 먹어야 된다고 구해달라고했다.

그들은 알았다고 하면서도 없어서 안된다고 하더라. 아프간에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이 정도를 병으로 안 치던지 노출될까 봐서 아예 시도를 안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국하고 협상하니까 얘기를 해달라고 몇번 부탁했다.

이들은 우리는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무전기로 주고받는다며 여긴 아프간이지 한국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중에 보니 한국에서 약을 3번이나 보냈는데...외무부 간부가 자기가 복용하는 것과 같은 약을 우리에게 보냈다고 들었는데 결국 안 왔다.(유)

--단식을 했나.

▲ 초반엔 민가에서 보호되면서 그 사람들도 못먹고 못살고 해서 적응이 안됐다. 비스킷 먹으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 달라고 손짓 발짓했다. 감자 2개를 절반으로 쪼개서 4명이서 먹었다. 기운이 없어서 하루종일 잠자고 다시 자고 그랬다. 갈수록 적응을 해서 돌이 씹히면서도 감자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우리 팀에는 단식한 사람은 없었고 단식이 아니라 초반에 잡혔을 때 빨리 구출해 달라고 금식 기도를 했었다. 사흘을 안 먹으니 그들이 보기엔 단식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유)

--위협을 가했나.

▲ 토굴 같은 데가 있었는데 절반은 비상구였다(서)

▲ 마당에 한사람 겨우 들어갈 토굴이 있었는데 4m 깊이 끝엔 T자로 25m 크기였다. 몸집 작은 사람이 겨우 갈 정도였다. 첨엔 걸려서 못 들어갔는데 어떻게 해서 들어갈 수 있게 했다. 첨엔 수틀리면 거기 감금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손짓 발짓으로 위협했다.

나중엔 밖에서 총격전을 벌이더니 그 다음엔 저사람들이 강도라고 했다. 교전이었는데 강도가 들어올 경우 유사시 비상구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유)

--살해 협박은.

▲ 맨 처음에 전체를 집합시켜서 일렬로 세우고 담벼락 앞에 기관총 소총으로 위협했다. 서너명이 무기로 위협하고 한사람이 비디오 카메라로 찍었다. 거의 패닉 상태였다.

그러더니 자기들이 알 카에다라면서 그제야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면서 돌변했다. 너희들 잘못하면 이렇게 (총쏘는 시늉을 하면서) 한다고 위협했다. 감금한 곳이 반 지하에 짐승 우리같은 창문 없고 환기통 하나 있는 곳이었다.

그때도 인질범을 교환한다면서 야간에 오토바이 타고 눈을 가리고(남자의 경우) 여자는 그냥 눈뜬채로..3대에 태워 그집을 갔다.

여기서 자라고 하길래 밖에서 잔다고 해놓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진척도 없었다. 출입문 반쯤 열리길래 인질범을 이렇게 교환하나보다, 방치하고 사라지나보다 싶었다. 나가보니 가축을 키우는 농가인데 할머니 1명이 앉아 있었다.

마을 아래로 내려가 구조요청해야겠다 했지만 말도 안 통해서 어려워 하고 있는데 갑자기 농부가 낫을 들고 쫓아오면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지르길래 황급히 들어갔다..주민들이 감시한 데도 있고 아닌데도 있었다. 위는 탈레반인데 밑에는 농가가 있었다. 그러다 밤에는 탈레반이 감시했다.(유)

--석방 양보설의 진실은.

▲저도 이제 관심이 있어서. 석방 뒤 물어보았는데 다들 지금은 패닉상태다.

들어보니 굉장히 아팠다고 하더라. 설사하고 며칠동안. 두 사람을 석방한다고 했는데 거기엔 나하고 먼저간 김지나 씨와 이지영 씨 등 여자만 3명이 있었다. 남은 한 사람이 힘들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기가 막혀서 울고 이러니까..자기는 회복이 됐다고 하면서 `나대신 너 가라'라고 그 사람에게 얘기해서 김경자 씨가 갔다.

부모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길래 설마해서 간단히 썼다. 100% 석방을 믿진 않았다.(서)

--8명 석방설은.

▲ 그런 건 전혀 몰랐다. 믿을 수가 없다.

-귀국하면 계획은.

▲ 직장 그만두고 이제 신학교를 다니는데 이번주 개강했으니 학교 가야하는데. 다들 죽었다 살아났는데 감격스런 마음일 것이다(유)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신도 먼저 좀 차리고(생각해 보겠다)(서).

--중동지역 선교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솔직히 신앙을 하는 입장에서 그래도 목사가 되기 전에 단기 선교 어떻게 하는지를 아는 선교사 중에 칸다하르에 있는 사람이 있는데 기도도 하고 지원도하고 싶어서 마침 아프간 팀이 가니까 같이 가라고 해서 갔다. 배우기도 하고 봉사도 의미있고 해서 간 것이다.(유)

--왜 배 목사가 살해됐나.

▲ 무작위로 데리고 나간 것이다. 본보기로 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12명(6+6) 중 1조 6명 중에 배 목사가 2조(4+2) 중 4명 그룹에서 심성민 씨가 나갔다.

고세훈 심성민 씨중 고세훈 씨를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너' 하고 여자 3명 무조건 끌고 나가라고 그러더라. 두건을 씌워서 그 뒤론 모른다. 방송 현지어 하는 사람말을 엿들으니 의아해하더라.

처음에 23명 다 무사하다. 23대 23으로 인질교환한다고 하더니 나중엔 한국군 철수하면 보내준다 변덕을 부렸다.

11명을 4명과 7명으로 분리하더니 7명을 둘로 분리했다. 남자를 한명씩 끼우는 것으로 유도했다. 아주 초기에는 그랬다.

--석방 당일 상황은.

▲ 탈레반이 2명 와서 4일밤을 자면 석방된다고 했다. 그때 탈레반이 휴대전화로 걸어서 "정부와 5일 전쯤 통화했다. 건강 이상없냐?, 누구 있냐?"고 물어 언제 나갈수 있냐고 했더니 며칠만 참으라고 했다.

29일에는 대체로 야간에 움직였고 낮에 이동할 이유는 없었는데. 그당시 나는 약을 못먹어서 기력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자고 있는데 탈레반이 와서 석방이라며 2명 먼저 간다고 하더라. 그날 정부 대표단에서 너하고 여자 1명하고 나와라. 여자부터 가라. 제발 나와라고 하더라.

4명이 같이 나가게 해달라고 해서 탈레반에게 바꿔 달라고 했는데 자기들끼리 이야기 하다가 그 중에 보스처럼 생긴 사람이 "너희 정부에서 다 보내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오후 4시쯤 서명화, 차혜진 씨 2명을 탈레반이 오토바이로 접선장소에 떨어뜨려 놓고 망원경으로 살펴볼때 둘러보니 적십자 차와 깃발이 눈에 띄었다.

강훈상 특파원 (카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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