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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농가 억류 때 탈출 시도…낫들고 쫓아와 다시 갇혀

등록 2007-09-01 09:23수정 2007-09-01 10:07

탈레반에 납치됐다가 30일 석방된 인질들이 카불에서 지난 29일 먼저 풀려난 동료들과 다시 만나 울음을 터뜨리며 서로 위로하고 있다.  카불/카불 협상단 제공
탈레반에 납치됐다가 30일 석방된 인질들이 카불에서 지난 29일 먼저 풀려난 동료들과 다시 만나 울음을 터뜨리며 서로 위로하고 있다. 카불/카불 협상단 제공
하어영 기자 카불 현지 특파
유경식·서명화씨 피랍 42일 재구성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됐다 풀려난 유경식, 서명화씨가 31일 탈레반에 납치된 상황과 살해 위협, 억류 생활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유씨의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42일 동안의 납치생활을 돌아본다.

납치 탕·탕…“전부 내려”

7월19일 북부 마자리샤리프에서 남부 칸다하르로 이동하는데 낮에 안전하고 밤엔 위험하다고 해서 낮에 지나려고 밤늦게 출발했다. 카불에 아침에 도착해 한국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가즈니를 지나면서 운전사가 “내가 아는 사람”이라며 두 사람을 태웠다. 우리가 “왜 태우냐”고 항의하니 “중간에 내려주면 된다”고 했다.

서명화(29)씨가 바지 안쪽에 쓴 ‘피랍 일지’(발췌)
서명화(29)씨가 바지 안쪽에 쓴 ‘피랍 일지’(발췌)
가즈니에서 20분 정도 가다가 오토바이를 탄 탈레반이 총을 겨누면서 “멈추라”고 했는데, 운전사가 무시하니까 발포를 했다. 운전사가 차를 세우니까 탈레반이 “길 옆으로 차를 빼라”며 또 한번 총을 쏘고, 탈레반 2명이 소총을 들고 차에 올라왔다. 운전사를 구타했고, “전부 내리라”고 했다.

탈레반은 나와 제창희씨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10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어떤 마을로 갔다. 나무 아래에 보스가 앉아 있고, 옆에 유탄발사기(RPG)와 기관총이 있었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어디서 왔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물었다. 뒤에 승합차로 12명 정도가 왔다. 나머지 일행도 데리고 왔다. 기도하는 곳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안에 소련제 에이케이(AK) 소총 등으로 무장한 10명 정도가 있었다. 핸드폰을 모두 회수하고, 카메라도 회수했다. 우리 일행 가운데 다리어를 잘하는 사람이 이유를 물었더니, 그 사람들이 “우리는 정부의 사복경찰”이라며 “너희들을 알카에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살해 위협, 분산 이동 “우린 알카에다”

“모두 밖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담벼락 앞 구덩이 쪽에 일렬로 세웠다. 서너 명이 기관총과 소총, 유탄발사기 등으로 겨눴다. 한 사람이 비디오로 찍었다. 우리는 패닉 상태였다. 그리고 “우리는 알카에다”라고 했다. 총 쏘는 시늉을 하며 “너희들 잘못하면 이렇게 한다”고 위협했다.

초창기에는 23명을 한꺼번에 경운기 짐칸에 태우고 달빛도 없는 시간에 이동했다. 나흘 뒤 분산되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민가를 돌아다녔다. 42일 동안 12번을 옮겨 다녔다. 주로 야간에 달이 없을 때 헤드라이트도 끈 오토바이에 태워서 이동을 했다. 몇 차례는 걸어서 이동하기도 했다.

11명이 같이 있을 때 탈레반이 “인질하고 교환한다”고 했다. 다음날 나머지 12명과 합류하는데 11명 가운데 4명한테 “먼저 타라, 합류하라”고 했다. 그 뒤로는 네 사람 소식을 몰랐다. 그 네 사람은 주로 산악을 다녔다고 한다. 남은 7명은 3명과 4명으로 분리됐다. 남자 1명에 여자 3명, 이런 식으로 남자는 꼭 끼웠다.

억류 생활 기운없어 종일 잠

감금하는 데가 반지하의 짐승 우리 같은 곳이었다. 가축을 키우는 농가에 있었던 적도 있다. 그때도 “인질과 교환한다”며 밤에 남자는 눈을 가리고 여자는 가리지 않은 채 오토바이로 갔다. 다음날 문이 반쯤 열리기에 나가 보니 여자 노인이 있었다. ‘구조요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세 명을 깨워서 문을 열고 나가는데 농부가 낫을 들고 쫓아왔다. “다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탈레반이 직접 감시한 곳도 있고, 농민들이 감시한 곳도 있다. 낮에는 농부고 밤에는 탈레반이 됐다.

근처에서 총격전이 있어서 미군과의 총격전으로 짐작했는데 나중에 강도라고 했다.

초반에는 민가에 있으면서 그들도 못먹고 못살아 적응이 안 됐다. 비스킷 한두 개 정도 먹으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달라고 손짓 발짓 했다. 감자 두개를 절반으로 쪼개서 4명이 먹기도 했다. 기운이 없어서 하루종일 잠을 자기도 했다. 갈수록 우리가 적응을 해서 돌이 씹히면서도 감자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초반에 잡혔을 때 금식기도를 7일 한 사람이 있었다. 탈레반이 보기에는 단식투쟁으로 비쳤는지 모른다.

갑상선 암을 앓아서 호르몬제를 두 알씩 먹어야 하는데, 하루치 여유만 있었다. 납치되고 나서 남아 있는 약을 한 알씩으로 줄였다. 그것도 일주일 돼 떨어졌다. “수술을 해서 그러니 하루 두 알 구해 달라”고 했으나 “없다”고 했다. “한국하고 협상하니까 얘기를 해달라”고 몇번 부탁했다. 그러자 “여기는 아프간이지 한국이 아니다”라고 했다. 외교부 관계자가 자기가 먹는 약을 세 번 보냈다.

살해 소식 도주하다가?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 살해된 것이나 두 사람이 먼저 석방된 것 아무도 몰랐다. 나는 배 목사가 살해됐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탈레반이 “여자 둘이 먼저 돌아간다”며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영어방송을 들려줬다. 1분쯤 들었는데, 그 순간에 ‘2명은 이미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는 소식이 나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내색을 못했다. 속으로만 알고 있었다. 배 목사님은 책임자니까 그러려니 짐작했고, 젊은 사람 중에 누가 반항하다가 탈주하는 것으로 오해받아 사살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탈레반이 고세훈씨와 함께 있던 심성민씨를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너”라고 부르며 “여자 3명을 끌고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탈레반이 “아프다고 해야지 빨리 풀어준다”며 강제로 시켜서 인터뷰를 했다고 들었다.

이지영씨의 양보와 석방 “같이 가게 해달라”

이지영씨도 설사를 하고 기진맥진했다고 한다. 탈레반이 “두 사람을 석방한다”며 이씨와 김지나씨 둘을 내보내겠다고 했다. 여성 3명이 있었는데, 남게 되는 한 사람은 생명에 위험이 있고 불안해할 것 같아 이씨가 “나는 회복됐다”며 “나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했다. 그래서 김경자씨가 대신 나갔다. 이씨가 양보를 하니까 탈레반이 감동해서 위로하는 차원에서 “가족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다.

탈레반이 와서 “석방된다”며 “2명 먼저 나간다”고 했다. “4명 같이 가게 해달라”고 했는데 보스처럼 생긴 사람이 “너희 정부에서 다 보내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때도 석방을 100% 확신은 안 했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인질과 교환한다”며 감금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카불/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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