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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줄곧 고개 숙인채 침통한 표정 “부모님 궁금해할까 일지 썼다”

등록 2007-09-01 09:31수정 2007-09-01 10:06

회견장 이모저모

탈레반의 인질극은 끝났지만 아프가니스탄에 감도는 전운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국내 취재진이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 도착한 31일 오전 9시55분께(현지시각) 공항엔 경찰의 경계가 삼엄했고 거리에도 무장 경찰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취재진을 안내한 정부 관계자는 “오전 8시께 공항 근처에서 폭탄테러가 있었다”며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도 들릴 만큼 큰 폭발이었다”고 전했다.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카불 시내의 세레나 호텔. 무장한 경비병력이 지키는 두 곳의 출입문을 지나 풀려난 인질 19명이 묵고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호텔 정문에선 소지품을 꺼내 보이고 적외선 탐지기를 지나야 했다.

11시30분께 회견장으로 유경식(55)씨와 서명화(29)씨가 들어섰다. 면도를 하지 않은 석방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유씨는 시종 고개를 숙인 채 침통한 표정이었고, 서씨도 얼굴이 창백하고 피곤해 보였다.

유씨는 차분하게 피랍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숨진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가 언급될 때마다 말을 잇지 못했다. 고통스러웠던 40여일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두 사람은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서씨는 조심스럽게 하얀 바지를 꺼냈다. 지난달 19일 납치된 때부터 풀려나기까지의 기록을 적어놓은 바지였다. 일기장을 빼앗긴 뒤 기지를 발휘해 자신의 바지 안쪽에 볼펜으로 쓴 기록이다. 서씨는 “부모님도 주변 사람들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 쓰기 시작했다”며 “먹고 싶은 것과 바람들을 적었다”고 말했다. 피랍된 서씨 남매의 아버지 서정배(57)씨가 <한겨레> 기자에게 구술해준 편지를 전달하자, 서씨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점심식사를 위해 호텔 1층에 모습을 드러낸 19명은 취재진과 시선을 피할 정도로 불안하고 침울한 모습이었다. 19명 모두가 서너 명씩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이동했다. 정부 관계자는 “대부분 이곳에 와서 배 목사와 심씨의 소식을 확인하고 나서 넋을 잃은 듯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카불/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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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견장 이모저모] 고개 숙인채 침통 “부모님 궁금해할까 일지 썼다”
서명화씨가 바지 안쪽에 쓴 피랍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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