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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탈레반 석방인질 탈 아프간 유엔기 동승기

등록 2007-09-01 10:14

"집 전화번호 기억못할 정도로 충격"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낸 6주간의 악몽을 잊어버리려 하는 것일까.

그들은 아프간을 떠나 두바이로 향하는 유엔 특별기를 타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질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탈레반의 손아귀에서 석방된 한국인 인질 19명을 실은 유엔 특별기는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이른 31일 오후 4시45분께(카불 현지시각) 카불 국제공항을 이륙했다.

비행기가 허공으로 둥실 뜨는 관성이 느껴지자 그들은 하나둘씩 가는 실눈을 뜨고 창문 밖을 내다봤다.

그리곤 이내 잠으로 빠져들었다.

납치 전 여느 젊은이와 다름없이 밝은 표정으로 찍은 사진을 들고 간 기자는 사진과 너무 달라진 이들의 모습 때문에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들의 표정은 피곤과 공포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했고 살도 무척 빠져 핼쑥하고 수척했다.

특별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때도 이들은 옆 사람과 잠시 담소를 나누며 미소를 잠시 머금다가 이내 초점 없는 멍한 눈으로 어딘가를 한참 동안 응시하곤 했다.

외교부가 인질 수송을 위해 마련한 95인승 특별기엔 인질 19명 외에 연합뉴스를 비롯한 국내 취재진, 김만복 국정원장, 외교부 관계자 등 60여 명이 탔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40분 정도 지난 뒤 음료가 서비스됐지만 7명만 오렌지주스, 콜라 등을 시켰을 뿐 잠을 자기 여념없었다.

다시 20분 뒤 고기파이, 케이크 등이 기내식으로 제공됐지만 이지영씨 등 여성 6명은 아예 기내식을 받지 않았고 나머지 역시 케이크와 야채에만 조금 손을 댔을 뿐 좀처럼 식성이 살아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봤지만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답변을 하지 않았다. 아예 말을 할 기력이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를 정도로 이들은 힘이 쭉 빠진 채 의자에 몸을 파뭍었다.

연장자이자 일행의 대표격인 우경식씨는 취재진에게 "제발 인질의 사정을 좀 봐달라"며 "집에 전화를 해야 하는데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겨우 입을 연 차혜진씨는 "마음이 편하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다"고 말했고 송병우씨는 "집에 전화를 하는 데 눈물이 났다"며 "다른 사람들이 너무 피곤하니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륙 뒤 2시간30분이 지난 뒤 두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것을 1천 시간을 돌아온 셈이다.

두바이 공항 활주로에 비행기 바퀴가 닿는 순간 그들의 뇌리엔 지난달 13일 카불로 들어가기 직전 경유했던 두바이의 기억이 잠시 스쳤을 게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 (카불발 두바이행 유엔 특별기 기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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