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 학살에서 화해로-르완다
검은 대륙 희망 찾기 ① 학살에서 화해로 - 르완다
<검은 대륙 희망 찾기>
⑴ 학살에서 화해로-르완다
⑵ 공정무역의 씨앗-에티오피아
⑶ 거듭나는 자원대국-콩고
⑷ 지속 가능한 관광-탄자니아·케냐
⑸ 억압의 사슬을 끊고-에티오피아
⑹ 또하나의 전쟁-보츠와나·남아공
⑺ 중국, 적인가 동지인가
⑻ 축복과 저주의 두 얼굴-나이지리아
⑼ 월드컵으로 뛴다-남아공
주검 널렸던 거리 새삶 활기…여성 ‘주역’ 부상
국제투자 밀물…성장률 ‘쑥쑥’ 에이즈감염은 ‘뚝’ 2007년 여름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의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한때 주검이 쌓였던 골목에는 휴대전화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13년 전 ‘투치는 바퀴벌레, 바퀴벌레를 박멸하자’고 선동했던 텔레비전에서는 군인들이 힙합춤을 추고 있었다. 도시의 겉모습에선 대량학살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르완다는 오늘날 모잠비크, 우간다와 함께 ‘아프리카의 세마리 사자새끼’로 불린다. 학살이 끝난 뒤 엄청난 속도로 재건에 몰두해 견실한 경제성장을 일궜기 때문이다. 르완다의 1994~2004년 연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10%를 웃돌아, 아프리카 대륙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종청소 이후 들어선 투치족 정권은 농업을 고부가가치형으로 전환하고, 공산품과 서비스 산업의 비중을 높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심각한 불황은 인종청소를 낳은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그 결과 홍차와 커피 등 환금작물의 생산이 급증했고, 제품 또한 고급화됐다. 정부가 앞장서 부패를 척결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외국 투자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르완다의 경제학자 앙드레 루시미샤는 “경제성장과 동시에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종화합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점이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와 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재건 과정에서 여성들이 핵심적 구실을 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르완다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48.8%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투치족 정권은 정부 핵심 각료직에 여성들을 최우선적으로 기용하고, 여성의원 할당제를 도입했다. 여성우대 정책은 불가피한 측면도 컸다고 르완다인들은 설명한다. 인종청소 당시 10가구 가운데 4가구 꼴로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활약은 결과적으로 르완다를 더욱 청렴하고 안전하며, 국민들의 복지에 신경 쓰는 나라로 만들었다. 르완다 정부는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교육과 보건에 쓴다. 초등학교 진학율이 94%에 이르고, 한때 6%대였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률은 3%대로 떨어졌다. 키갈리는 아프리카에서 밤에도 마음 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안전한 수도로 꼽힌다. 르완다는 우간다·부룬디·콩고민주공화국·탄자니아 4개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키갈리를 ‘아프리카의 두바이’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인적·물적 교역을 대폭 늘려 아프리카의 ‘허브’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르완다는 여전히 가난하다. 빈곤층 비율은 1994년 70%에서 2006년 57%로 떨어졌을 따름이다. 말라리아 등으로 인한 영아 사망률도 높다. 최근에는 빈부 격차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최근 보고서에서 “르완다 상위 20%의 소득이 최근 10년간 갑절 늘어난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는 등 양극화가 심화돼 앞으로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⑵ 공정무역의 씨앗-에티오피아
⑶ 거듭나는 자원대국-콩고
⑷ 지속 가능한 관광-탄자니아·케냐
⑸ 억압의 사슬을 끊고-에티오피아
⑹ 또하나의 전쟁-보츠와나·남아공
⑺ 중국, 적인가 동지인가
⑻ 축복과 저주의 두 얼굴-나이지리아
⑼ 월드컵으로 뛴다-남아공
상흔처럼 박힌… 1994년 르완다 인종청소 당시 수도 키갈리에 주둔했던 벨기에 평화유지군의 본부. 10명의 군인이 사살된 이 건물의 벽에는 총알 자국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당시의 참상을 말해준다. 키갈리/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국제투자 밀물…성장률 ‘쑥쑥’ 에이즈감염은 ‘뚝’ 2007년 여름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의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한때 주검이 쌓였던 골목에는 휴대전화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13년 전 ‘투치는 바퀴벌레, 바퀴벌레를 박멸하자’고 선동했던 텔레비전에서는 군인들이 힙합춤을 추고 있었다. 도시의 겉모습에선 대량학살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르완다는 오늘날 모잠비크, 우간다와 함께 ‘아프리카의 세마리 사자새끼’로 불린다. 학살이 끝난 뒤 엄청난 속도로 재건에 몰두해 견실한 경제성장을 일궜기 때문이다. 르완다의 1994~2004년 연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10%를 웃돌아, 아프리카 대륙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종청소 이후 들어선 투치족 정권은 농업을 고부가가치형으로 전환하고, 공산품과 서비스 산업의 비중을 높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심각한 불황은 인종청소를 낳은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그 결과 홍차와 커피 등 환금작물의 생산이 급증했고, 제품 또한 고급화됐다. 정부가 앞장서 부패를 척결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외국 투자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르완다의 경제학자 앙드레 루시미샤는 “경제성장과 동시에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종화합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점이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와 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재건 과정에서 여성들이 핵심적 구실을 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르완다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48.8%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투치족 정권은 정부 핵심 각료직에 여성들을 최우선적으로 기용하고, 여성의원 할당제를 도입했다. 여성우대 정책은 불가피한 측면도 컸다고 르완다인들은 설명한다. 인종청소 당시 10가구 가운데 4가구 꼴로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활약은 결과적으로 르완다를 더욱 청렴하고 안전하며, 국민들의 복지에 신경 쓰는 나라로 만들었다. 르완다 정부는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교육과 보건에 쓴다. 초등학교 진학율이 94%에 이르고, 한때 6%대였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률은 3%대로 떨어졌다. 키갈리는 아프리카에서 밤에도 마음 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안전한 수도로 꼽힌다. 르완다는 우간다·부룬디·콩고민주공화국·탄자니아 4개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키갈리를 ‘아프리카의 두바이’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인적·물적 교역을 대폭 늘려 아프리카의 ‘허브’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르완다는 여전히 가난하다. 빈곤층 비율은 1994년 70%에서 2006년 57%로 떨어졌을 따름이다. 말라리아 등으로 인한 영아 사망률도 높다. 최근에는 빈부 격차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최근 보고서에서 “르완다 상위 20%의 소득이 최근 10년간 갑절 늘어난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는 등 양극화가 심화돼 앞으로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르완다 지역별 ‘인종청소’ 희생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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