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유목민 10만명 국적 안줘
교육은 물론 취업도 못해…빈곤 허덕
교육은 물론 취업도 못해…빈곤 허덕
24살 나세르는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다. 그러나 이 석유 부국을 ‘우리 나라’라고 부르지 못한다. 1961년 독립 당시, 현재의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아라비아 반도와 걸프 연안을 돌아다니며 유목생활을 해온 조상이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세르는 쿠웨이트 시민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무료 교육과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며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고 취업도 안된다. 안전을 우려해 성을 밝히길 꺼리는 나세르는 “우리의 삶은 절망적”이라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4일 보도했다.
통신은 나세르처럼 빈곤과 좌절에 한숨짓는 아라비아 반도의 유목민 후예 ‘비둔’ (아랍어로 ‘(국적이) 없다’는 뜻)이 쿠웨이트에 10만명에 이르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 복지단체의 도움으로 생계를 잇는 이들은 현재의 국경선이 확정된 60년대 국경과 국적 개념이 없던 유목민의 후예들이다.
애초 이들은 쿠웨이트인과 같은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며 각종 혜택이 끊기고, 외국인으로 등록할 것을 강요받았다. 비둔은 애초 쿠웨이트 군에 많이 진출했었다. 비둔에게 허용된 거의 유일한 공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1990년 이라크 침공 이후 차단됐다. 당시 이라크에 협력했다는 의혹을 받은 것이다. 미국의 민간단체 국제난민협회(RI)는 7월 보고서에서 비둔들이 “사실상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쿠웨이트 정부는 이들이 쿠웨이트 국적 취득을 위해 무국적자로 가장한 외국인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렇지만 쿠웨이트에서도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쿠웨이트 인권운동가 카넴 알나자르는 비둔의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는 비둔 5천명이 모인 이 집회에서 정부 정책을 “위헌이며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이들이 사회불만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쿠웨이트 정부는 위원회를 구성해 이들의 시민권 자격을 심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4월까지 국적을 얻은 비둔이 1만1675명에 그치는 등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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