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진압 ‘유혈’사태 길어질듯…야당 “정부가 킬링필드 만들고 있다”
케냐의 유혈사태가 3주째를 맞으면서 장기화하고 있다.
100만명이 사는 아프리카 최대 판자촌인 키베라 마을에서는 경찰 100여명이 기자들의 출입을 차단한 뒤, 여성과 아이 등을 가리지 않고 실탄과 최루탄을 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외신들이 17일 보도했다. 엘도렛 등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이 병원 안까지 난입해 최루탄과 실탄을 사용했다고 케냐 일간 <이스트아프리칸스탠다드>는 전했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라일라 오딩가 오렌지민주운동(ODM) 대표는 16일 평화시위가 시작된 뒤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적어도 8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오딩가는 “경찰은 고의적으로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며 “정부는 이 나라를 무고한 이들을 죽이는 킬링필드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피해가 늘어나자, 오렌지민주운동은 18일 거리시위 포기를 선언했다. 이어 므와이 키바키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주요 기업 제품에 대한 보이콧으로 투쟁 노선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보이콧 대상 기업에는 공영 버스회사와 은행, 식료품 기업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노선 변경은 정부에 대한 항복이라기보다, 극심한 가난으로 이틀 이상 시위 참석이 어려운 대중들의 생계를 고려한 것이라고 영국 <가디언>은 풀이했다.
국제사회는 케냐 정부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최대 원조자 가운데 하나인 유럽연합(EU) 의회는 케냐 정부가 대선을 둘러싼 갈등 국면을 해결할 때까지 금전적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17일 발표했다. 의회는 성명서에서 “현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며 “공평한 표 재집계가 불가능하다면, 재투표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주 아프리카연합(AU)의 중재 노력이 실패한 뒤,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과 전 탄자니아 대통령 벤자민 음카파, 넬슨 만델라의 부인 그라사 마셸 등이 다시금 중재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케냐의 정치 평론가 오마르 은야고는 “키바키는 대테러전쟁을 지지하고 다국적 기업의 수익률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부정 선거건도 어물쩍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미국 등의 미온적인 태도로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말 대선 부정 시비에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종족 대립으로 확산되며 650여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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