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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이라크 아랍계의 쿠르드 ‘왕따작전’

등록 2008-01-23 00:03

이라크 의회에선 21일 밤 정부가 제출한 올해 예산안을 비준하는 문제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라크 의회의 아랍계 정파들이 21일 오후 늦게 정부의 올해 예산안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자 의회 의장이 이들 정파의 지도자를 긴급 소집한 것.

올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아직도 이라크 의회가 480억 달러에 대하는 예산안 문제로 몸살을 앓는 것은 정부 예산 가운데 쿠르드족에 할당되는 17%의 몫에 아랍계 정파가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시아 아랍계 정파인 이라크 리스트의 오사마 알-누자이피는 "쿠르드족에 가는 예산 17%는 불공평하다"며 "`페슈메르가' 예산은 쿠르드 자치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중앙정부의 국방예산에서 나갈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10여만명 규모로 알려진 페슈메르가는 사담 후세인 시대의 쿠르드족 반군으로 후세인 정권 몰락 뒤 쿠르드 자치정부 관할 지역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자치 군대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직이다.

이와 관련, 아랍계 의원인 마무드 알-아자위는 "쿠르드 지역과 페슈메르가에 할당하는 예산안에 문제가 있다"며 거부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쿠르드족 정파와 자치정부는 페슈메르가 조직이 이라크 군ㆍ경을 대신해 엄연히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의 치안을 맡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국방예산에서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아랍계의 쿠르드족 견제 움직임은 다른 분야에서도 감지된다.


시아ㆍ수니파 소속 의원 145명은 지난 13일 쿠르드 자치정부가 바그다드 중앙 정부의 승인이나 협의 없이 단독으로 외국 석유기업과 유전 개발 계약을 맺는 등 행위를 비난하는 공동 선언문을 이례적으로 채택했다.

후세인 정권 붕괴 뒤 집권한 시아파와 권토중래를 노리는 수니파로 나뉘어 사사건건 갈등을 빚곤 했던 아랍계가 쿠르드족과 연관된 사안에는 한 목소리를 내는 셈이다.

이 선언문을 대표로 읽은 오사마 알-니지피 의원은 "이라크의 단합을 유지하고 부(富)를 분배하는 데는 반드시 공식이 있다"며 "석유와 천연가스는 국부이며 우리는 이를 혼자 가지려는 세력을 우려하고 있다"고 쿠르드 자치정부를 겨냥했다.

쿠르드족이 이라크전 개시 이래 철저한 친미세력으로 돌아서 미국을 등에 업고 있지만 이방인인 그들에게 이라크 땅에서 나는 `노다지'를 순순히 넘겨 주진 않겠다는 속내다.

쿠르드족이 차지하는 지역은 이라크 남부 만큼은 아니지만 석유 매장량이 상당하다.

미국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처럼 최근 이라크에선 시아와 수니파의 종파 간 폭력사태에 가려 그간 잠복했던 민족 간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비록 같은 나라 국민이고 종교도 같지만 아랍 민족과 쿠르드 민족이라는 핏줄의 차이는 아랍계 내부의 종파 간 분쟁보다 더욱 심각한 대치 상황으로 이라크를 몰아 넣을 우려가 크다.

중동의 떠돌이 민족인 쿠르드족은 이라크전 이후 전개되는 정세를 독립국가 건국의 절호의 기회로 여기면서 마치 주권 정부처럼 독자행동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이라크 정부는 이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사태를 조기 종결해야 하는 미국 정부가 쿠르드 자치정부에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할 경우 아랍계 중앙정부의 쿠르드 `왕따' 작전이 더욱 노골화될 전망이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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