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심리 땐 이슬람-세속주의 충돌 우려
‘사법 쿠데타’ 비판 속 EU도 “법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사법 쿠데타’ 비판 속 EU도 “법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터키 헌법재판소가 이슬람 세력인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해체 문제에 대한 심리에 들어갈지를 곧 결정하기로 해, 이슬람과 세속주의 세력의 충돌 우려가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심리 결정을 내리면, 세속주의 세력이 요구하는 집권당의 해체와 대통령·총리의 업무 중지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슬람 세력의 격렬한 반발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압두라만 얄친카야 터키 검찰총장은 지난 14일 헌재에 낸 제소장에서 △정의개발당을 해체하고 △향후 5년간 압둘라 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 등 지도급 당직자 71명의 정치 활동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집권당의 활동이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게 제소 이유다. 162쪽짜리 제소장에는 에르도안 총리의 여러가지 발언과 연설, 대학에서 히잡 착용을 허용한 의회의 최근 헌법조항 개정, 주류 판매금지 시행령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헌재는 이번주 안으로 심리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터키시데일리뉴스> 등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1963년부터 지금까지 헌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24개 정당을 해체했다. 친쿠르드 성향의 민주사회당(DTP)도 분리주의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상태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집권한 정당을 해체시키라는 터키 검찰의 이번 제소는 세속주의 세력의 ‘사법 쿠데타’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 최근 헌법 개정 등에서 이슬람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던 세속주의 세력이, 터키의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정교분리를 앞세워 고강도 반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 헌법 전문가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와 한 인터뷰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제거하려는 세속주의 세력의 정치적 시도”라며 “정의개발당이 세속화 반대활동의 구심점이라는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앙카라대학의 한 교수는 “옛 엘리트 집단과 새 엘리트 집단 사이의 갈등”으로 해석하고 “옛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현 관료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 사법부마저 정치적으로 변한 것”으로 풀이했다.
해체 위기까지 몰릴 수 있는 이슬람 세력은 터무니없는 책동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원내 다수 의석을 장악한 정의개발당은 헌법을 개정해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체 권한 자체를 박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도 이번 제소의 비민주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올리 렌 유럽연합 확장집행관은 “정치적 사안은 법정에서 논의·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의회에서 논의되고 투표로 결정되는 게 일반적인 유럽의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터키가 가입을 절실히 추진하는 유럽연합 쪽에서, 세속주의 세력의 무모한 시도에 제동을 걸고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터키 세속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온다. 종교적 성향을 지나치게 반대하는 나머지, 종교의 자유마저 억압한다는 지적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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