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 수용되자 점령 하루만에…다른 지역선 충돌확산 조짐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장악했던 시아파 반미 정치·군사조직인 헤즈볼라가 10일부터 시내에서 철수하기 시작해, 레바논 내전 위기는 완화되고 있다. 다만 친헤즈볼라 세력과 정부 지지세력 간의 충돌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추가 충돌에 대한 우려는 사라지지 않는다.
군복을 입은 채 베이루트 시내를 점령하고 있던 헤즈볼라 군인들은 시내에서 자취를 감추고, 일부 헤즈볼라 동맹세력만 남았다고 <로이터>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베이루트 봉쇄와 공항폐쇄가 곧 풀릴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헤즈볼라의 베이루트 철수는 통신망 폐쇄 시도 중단 등 헤즈볼라의 요구사항을 레바논 정부군 쪽이 대폭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푸아드 사니오라 총리 내각은 헤즈볼라-시리아 간 통신망을 폐쇄하고, 친헤즈볼라 성향이라는 ‘혐의’로 베이루트 공항의 보안국장을 해임하려 했다. 이에 반발한 헤즈볼라는 지난 7일부터 친미 수니파 정부 지지세력과 무력충돌을 벌여 37명이 숨졌으며, 베이루트는 9일 사실상 헤즈볼라 손에 떨어졌다.
사니오라 총리는 정부군에 ‘헤즈볼라 격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해결사’로 나선 군은 되레 내각의 ‘헤즈볼라 무력화 시도’ 조처를 무효화시켜, 헤즈볼라의 요구를 들어줬다. <비비시>(BBC) 방송은 군의 조처가 수도로 진군한 헤즈볼라의 ‘체면을 세워줬다’고 평가했다. 군은 동시에 내각의 요청에 따라 치안 확립과 정부요인 보호 및 범법자 체포에 나서기도 해, 결국 양쪽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 셈이 됐다.
군의 해결능력에 거는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정부군 쪽은 과거 종파 갈등이 내전으로 비화한 것을 고려해, 최근 무력충돌 사태에 적극 개입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 있었다.
무력충돌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북부 트리폴리에서도 10일 친헤즈볼라 성향의 무장세력과 정부 지지자들 사이에 기관총, 로켓포 등을 동원한 총격전이 일어나, 적어도 12명이 숨지고 20명이 다쳤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알레이, 시돈 등지에서도 유혈 충돌이 보고됐다. 헤즈볼라도 ‘시민 불복종’ 운동을 계속해나가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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