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주변 해역이 해적들의 발호로 무법천지로 변했다.
주로 화물선과 어선, 요트를 납치해 몸값을 받아내던 소말리아 해적이 무기 수출선과 초대형 유조선으로 `사냥감'을 넓히고 나서면서 아덴만과 인도양의 해상 교통로가 `하이재킹 로드'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
미국, 러시아, 인도 등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각각 전함을 파견, 해적과의 전쟁에 돌입한 상태이지만 해적 제어에 한계를 드러내며 선박 피랍이 속출하고 있다.
◇"피랍 또 피랍.."
소말리아 해적은 지난 15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유조선 `시리우스 스타'호를 납치한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식탐'을 드러내고 있다.
18일 하루동안 아덴만 해상에서 홍콩 화물선, 태국 어선을 잇따라 납치,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로써 최근 2주 사이에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선박은 모두 8척으로 늘어났다.
또 케냐 뭄바사에 본부를 둔 항해자지원프로그램 앤드루 므완구라 지부장은 그리스 벌크선도 같은 날 아덴만 해상에서 피랍됐다고 주장했다.
노엘 충 국제해사국(IMB) 소장은 19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통제 불능 상황에 놓였다"면서 "유엔과 국제사회가 해적들을 저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함에도 대드는 해적
인도 해군은 자국 함정에 공격을 가한 해적 모선 1척을 격침시켰다고 19일 밝혔다. 전날 저녁 아덴만 해상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하던 인도해군 `타바르'호가 문제의 선박을 발견, 조사를 위해 정선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인도 해군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정선을 요구받은 해적들은 "가까이 다가오면 군함을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한 뒤 소지하고 있던 총과 로켓추진 수류탄발사기로 선공을 가했으며, 이에 타바르호가 응사하자 모선에서 폭발이 발생한 뒤 바다로 가라앉았다.
타바르호는 이어 고속정 2대에 나눠타고 도주하는 해적들을 추적, 이중 1대를 나포했다고 인도 해군은 밝혔다.
◇해운사 "희망봉으로 항로 우회"
소말리아 해적들은 해상교통 흐름까지 바꿔놓고 있다. 세계적인 해운사들이 해적들이 날뛰는 아덴만을 피해 유류비, 보험료 등 비용은 물론 시간이 훨씬 더 소요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항로를 채택하고 있는 것.
국제건화물선주협회(인터카고) 사무총장 로브 로마스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해운사들이 수에즈 운하를 피해 항로를 변경하고 있다"면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등으로 수에즈 운하가 폐쇄된 적은 있지만 해적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미증유의 일"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항로로 연간 통과 선박이 2만여척에 달하는 수에즈 운하가 길목인 아덴만이 해적들에 의해 장악되면서 기피 항로로 전락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 피랍된 시리우스 스타호도 희망봉을 거쳐 미국으로 가려다 케냐 먼마다에서 피랍됐다는 점에서 희망봉 항로도 결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해적 왜 발호하나
소말리아 해적이 발호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소말리아가 국가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1년 독재정권이 붕괴된 이래 내전에 시달려온 소말리아는 압둘라히 유수프 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지난해 3월 수도 모가디슈에 입성하면서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됐지만 내전이 심화되면서 혼란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이슬람 반군이 수도 모가디슈 주변 지역을 대부분 장악하면서 임시정부가 붕괴 직전에 직면했다.
이러다 보니 반자치지역인 푼트란드 항구도시 에일 등지에 기반을 둔 해적을 제어할 공권력이라고는 기대난망인 상황인 것이다.
특히 내전 과정에서 흘러나온 로켓추진수류탄(RPG) 등 중화기로 무장한 해적이 선박을 납치, 몸값을 받아내고 이 돈으로 최신 무기를 사들여 또다시 선박 납치에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해적들이 몸값으로 벌어들인 돈이 3천만달러에 달하며, 올들어 지금까지 받아낸 몸값만해도 6천만∼7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권정상 특파원 jusang@yna.co.kr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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