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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블로그] 각자의 의지를 부과하는 팔레스티나와 이스라엘

등록 2009-01-12 18:37

외국 기자들이 본 이스라엘의 팔레스티나 침공의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정확한 보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정부는 외국기자들뿐만 아니라 어떤 기자도 전쟁 지역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재 보도되고 있는 상황은 그 전쟁 지역에서 이미 봉사하고 있던 외국인 봉사자들 (의사, 간호원, 등)과 취한 연락에서 얻은 정보로 전쟁 지역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 그곳에서 무슨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솔직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보는 이 전쟁의 책임은 하마스이고, 하마스는 단지 테러 집단이고, 반면에 이스라엘은 그 지역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나라라고 믿고 있다. 라빈 수상을 살해한 자는 누구인가를 기억하는가? 극우 유태 광신자이고 올머트 (Olmert)의 후계자로서 지명된 여자를 수상으로 임명하는 것을 거부한 세력은 누구인가? 극우 유태 종교 정치단체였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카산드라로서 오늘날 별 의미가 없다. 하마스는 민주주의 수단인 국민투표에 의해 팔레스티나인들에 의해 다수의 투표를 얻은 합법적인 정당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과 유럽인들에게는 테러로 보이겠지만, 팔레스티나인들에게는 그들의 땅을 회복하기 위한 정당한 수단일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간의 분쟁을 역사적 시간대로 살펴보자.

팔레스티나는 필리스티아인들에게서 나온 이름이고, 이들은 기원전 8세기쯤 경에 이 곳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대 로마의 손아귀에 있었고, 오토만터어크에 의해 1517년에 점령되었고, 1917년 이후, 영국의 식민지하에 들어갔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티나 지역을 두개의 국가로 분할하는 계획을 제시했고, 하지만 아랍 세계에서는 그것을 거부했다.

1948년 5월 14일 유태인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선포했고, 이집트, 시라아,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의 공격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그들을 격퇴했다. 이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1982년까지무력에 의존하도록 하는 정책을 유지하게 했고, 약 780.000명의 팔레스티나인들은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스라엘 역사가인 베니 모리스(Benny Morris)는 1947년과 1948년에 벤 구리온 (Ben Gurion) 정부는 아랍인들의 축출을 공식적으로 계획하지 않았지만, 팔레스티나인 피난민들이 되돌오고자 했을때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내각에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1959년 얏세르 아라파트 (Yasser Arafat)는 알 파타 (Al Fatah)를 조직했고, 1964년에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OLP)를 세웠다.

1967년에 6일 전쟁이 일어났고,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와 공군을 분쇄했고, 팔레스타인들의 저항이 강하게 형성되고 있었던 서부요르단과 가자 (Gaza)를 점령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점령 이후, 팔레스티나 (특히 서부요르단 지역) 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나아졌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수 백만명의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로 일하러 갔고, 그로 인해 자동차와 스쿠터가 상당히 증가했다. 하지만 이 젊은이들, 특히나 중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에게서는 내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점령군을 증오했고, 단지 무기에의 호소만이 이스라엘의 점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알 파타 (Al Fatah), 또는 마르크스주의적 조직들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팔레스티나 해방 조직의 공격들은 더욱 빈번해졌고 장관적이 되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강력한 보복이 시작되었다.

1977년 이후, 메나헴 베긴 (Menahem Begin)의 정부와 함께, 유태인들의 정착지는 확장되기 시작했다. 아리엘 샤론 (Ariel Sharon)은 점령지역의 이스라엘 영토 소유라는 표면적 의도와 함께 정착민들을 더욱더 가자와 서부 요르단내의 점령 지역의 심장부안으로 밀어 부쳤다. 1982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고, 사브라 (Sabra)와 차틸라 (Chatila)의 피난민 캠프의 수 백만명의 팔레스티나인들을 학살하게 되었다. 1987년 제 1차 인티파다 (Intifada)가 발발했다.

1993년 9월 13일에 아라파트와 라빈 (Rabin)은 오슬로 (Oslo)에서 협약에 서명했다. 이 서명은 이스라엘 점령 지역들내에서의 팔레스티나 자치권 (autonomy)를 발효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해에 팔레스티나 해방 기구는 팔레스티나 영토내에서 첫번째 본부로 가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극보수 또는 정통 유태교 출신의 한 이스라엘인에 의해 라빈수상이 암살되게 되었다.

2000년에 제 2차 인티파다가 발발했고, 2002년 에 아라파트의 거주지인 무카타 (Muqata)와 라말라 (Ramallah)의 팔레스티나 자치 정부 본부의 포위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간의 경계선에 벽을 쌓기 시작했다.

2003년에 미국, 러시아, 유럽 연합 (EU) 그리고 국제 연합은 로우드 맵 (Road Map)을 제시했다. 2004년에 온건주의자로 알려진 아부 마젠 (Abu Mazen)은 아라파트를 계승하게 되었다.

2005년 이스라엘은 가자 지역에 세웠던 이스라엘 정착지들을 허물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이것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이 정책을 강행했다. 아리엘 샤론 정부는 팔레스티나의 아부 마젠을 의장으로 하는 자치 정부와 합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가자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샤론은 아부 마젠에게서 어떠한 정치적 역할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 정부 쪽에서는 이 합법적인 대표들과 가자를 인도하기 위한 협상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교섭 상대로서 인정되는 것을 샤론 정부에 의해 부정되는 상황은 온건주의적인 아부 마젠 정부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하마스는 세력을 확장시키는데 성공했고, 가자의 팔레스티나인들에게 이스라엘을 대하는 유일한 노선은 근본주의적 (fundamentalist) 극단주의라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2006년 1월의 국회 선거에서 하마스 (Hamas)는 다수의 팔레스티나인들의 지지로 다수당이 되었고, 2007년 하마스의 민병 (militia)은 가자의 파타를 공격했고, 수백명의 전사자를 냈다. 가자 지역의 하마스 민병대들은 아부 마젠과 그의 지지세력들을 밀어냈고, 그 지역을 완전 통제하게 되었다.

이 중동 전쟁의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티모시 가톤 애쉬 (Timothy Garton Ash)는 이 원인을 유럽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1881년의 러시아의 포그롬 (pogrom), 프랑스에서의 드레퓌스 (Dreyfus) 사건, 1900 년경의 오스트리아에서의 반유태주의 확산 그리고 히틀러의 등장, 등의 유럽에서의 반 유태적 분위기는 유태인들로 하여금 정치적 시온니즘을 향한 추진력을 야기시켰고, 그리고 팔레스티나로의 유태인의 이주,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를 야기했고, 이것은 오늘날까지 반복되는 전쟁을 지속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 국가의 성립은 누가 결정했는가? 유럽 제국주의 싸움에서 나온 부산물로서 당시 식민지였던 아랍 세계와의 대화없이 일방적으로 유럽, 당시 그 지역 통치국이었던 영국 그리고 2차 대전후의 미국의 지지로 인해 성립되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 정치 평론가인 쟝 다니엘 (Jean Daniel)은 1956년에 벤 구리온과의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에서 벤 구리온은 이스라엘을 모델 사회로 만들 것이고, 주변 아랍 국가들에 융합하고, 이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예를 따르는 것이 의무적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이 예언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들에 민주주의를 수출하지 못했고, 종종 점령과 전쟁을 가져왔다. 아랍 국가들은 권위주의적, 군주적, 신정일치적 국가들로 남아있다. 왜 벤 구리온이 예언한 것처럼 되지 못했는가? 많은 복잡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종교의 문제가 근본적이다. 그에 따르면 오랫동안 영토적 분쟁, 제국주의적 경쟁 또는 경제적 이익으로 이 전쟁을 설명할 수 있었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에 따르면, 이 전쟁의 원인은 종교적 분쟁의 사실에 근거한다는 현실앞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간의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하마스는 테러 집단이라는 것과 팔레스티나는 두 개의 정치 집단으로 나누어져 있고 테러 집단으로 규정되고 있는 하마스가 팔레스티나인들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이 하마스는 이스라엘인을 증오하고 죽이도록 교육한다고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하마스는 민주주의 방식의 하나인 국민 투표에 의해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정치 집단이고 이것을 이스라엘은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 또한 한 국가가 점령군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대화와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세계 역사 어디에서나 증거로 나오고 있지 않는가?

단지 팔레스티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스라엘도 내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클린톤 대통령 시절 부국무장관이었던 마틴 인다이크 (Martin Indyk)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방부장관인 배렄 (Barak)는 두 개의 날짜를 머리에 염두해 두고 이 전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버머의 취임식날과 2월의 이스라엘에서의 선거. 그는 하마스를 다루는데 있어 그의 능력이 매우 능률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므로서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생각을 염두해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하마스가 그가 예상했던 방식과 시간대로 반응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1967년 전쟁 이후 세대로서 작가인 에트거 커렛 (Etgar Keret)은 양 쪽 다 너무 많은 폭력을 사용하고 있고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라이트의 손에 놀아날 것이라고 염려했다. 전통적으로 전쟁시에 라이트가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것과 하마스의 승리이후 이스라엘의 레프트 (노동당, 리쿠트 (Likud), 카디머 (Kadima))는 그 영향력이 축소되었고 이로 인해 레프트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격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동 문제 전문가들 중의 한 사람인 버나드 루이스 (Bernard Lewis)는 그가 쓴 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협상의 두 당사자들중에 한 당사자의 거부 또는 퇴장은 어디로 두 협상 당사자들의 국가를 몰고 갈 수 있을까? 이스라엘은, 무장력으로 서부 요르단 해안와 가자를 통제하는데 성공할 수 있고, 미래에 있을 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의 결합할 모든 가능성들을 없앴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댓가는 높을 것이고 항상 더 높아질 것이다. 또한 성공의 시기에도이스라엘인들은 전 아랍 세계에 그들의 의지를 부과하는 것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지속적인 분쟁의 댓가는 아랍 세계와 이스라엘간의 끊임없는 분쟁과 이스라엘의 정치조직과 사회에 대한 유해한 영향과 함께 이스라엘의 증가하는 고립이 있을 뿐이다.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인, 아랍인들 (팔레스티나인들을 포함해서) 무력으로 그들의 의지를 각 자에게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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