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불복’ 이란 개혁파 다시 결집하나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 전문가회의 의장이 17일 테헤란대학교에서 열린 금요예배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그는 이날 “구속된 시위자들을 석방하라”고 주장했다. 테헤란/신화 연합

라프산자니 대선 뒤 첫 정부 공개비판
수천명 1달여만에 시위

이란 개혁파 지도자이자 최고위 성직자 중 한 명인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문가회의 의장이 “구속된 시위자를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라프산자니 의장은 17일 라디오로 생중계된 테헤란대학교의 금요예배 설교에서 “구속된 시위자들을 감옥에 더이상 가둬둘 필요가 없다”며 “이런 일로 적들이 우리를 비웃게 놔두지 말자”고 말했다. 이란에서는 지난달 12일 대선 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으며, 이란 정부는 시위 참가자와 개혁파 정치인 등 수백명을 구금했다. 이날 예배에는 개혁파 대선 후보로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가 앞줄에 앉아 설교를 경청하며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테헤란대 금요예배는 이란의 가장 중요한 종교·정치 행사이며, 금요예배 설교자로 나선 라프산자니 의장도 대선 뒤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섰다. 무사비 진영의 상징색인 녹색의 마스크와 두건을 쓴 채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설교에는 개혁파 세력이 대거 결집해 세를 과시했다. 테헤란대 앞에는 무사비 지지자 등 개혁파 수천명이 모여 “무사비, 무사비, 우리는 당신을 지지한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예배당 안에 있던 무사비 지지자 일부가 설교가 끝난 뒤 합류해 시위대 숫자는 수천명까지 늘어났고, 이들은 테헤란 시내를 행진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강제해산했으며, 시위 진압 과정에서 최소 15명이 체포됐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라프산자니는 부정선거 의혹을 다시 제기하고 선거 결과에 대한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그는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아직도 (대선 결과에 대해)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며 “토론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된 지난달 대선의 부정선거 의혹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시위를 진압한 강경파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수호위원회 등 강경파들이 선거를 둘러싼 논란에 귀 기울이지 않아 단합을 해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라프산자니는 전 대통령이자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도 꼽히는 정치인이어서, 이날 설교는 부정선거 의혹으로 촉발된 개혁 요구 움직임의 또다른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혁파들이 재결집하는 계기가 될지도 주목된다. 지난달 최대 수십만명이 결집했던 개혁파 시위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지난달 19일 테헤란대 금요예배에서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뒤 강경진압돼 사그라들었다.

한편, 이날 골람 레자 아가자데 이란원자력기구 대표가 사임했다. 일부에서는 아가자데가 무사비 후보와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조기원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