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동·아프리카

이란 정부 ‘학문의 자유’에 칼 겨눈다

등록 2009-09-02 20:20

하메네이 “인문학이 이슬람 훼손”…커리큘럼 재검토 촉구
이란의 대학가에 숙청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새학기 개강을 앞두고 이란 대학가에선 이슬람근본주의 보수파 정부가 정치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교수들을 추방하고 이슬람 가치에 반하는 교육과정도 모두 폐지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이같은 우려는 이란의 집권보수파가 지난 6월 대선 직후 개혁파 지지세력과 젊은 세대의 격렬한 시위가 이슬람 가치에 위배되는 사상에서 비롯했다고 보고 개혁파 학자들을 대거 가택연금하거나 체포하면서 불거졌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지난 30일 “사회과학 연구가 의심과 불확실성을 키운다”며, 열성적인 이슬람 수호자들이 대학에서 가르쳐지는 인문학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고 이란 관영 <이르나>(IRNA) 통신이 전했다. 하메네이는 “인문학과 자유주의적 학문의 다수가 물질주의와 불신앙에 토대를 두고 있다”며, “그런 학문을 가르치는 것은 신앙과 이슬람적 지식의 손실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이란의 보수세력은 오래 전부터 외부에서 유입되는 철학과 사회과학에 경계심을 보여왔다. 신학이 아닌 세속 학문이 대학을 정치적 불안정을 양산하는 인큐베이터로 만들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초기에는 혁명 지도자들이 대학을 폐쇄하고 대학 커리큘럼을 혁명 이념에 맞게 고치려는 시도까지 했다. 이슬람 신정체제에서 학문의 존재 이유는 이슬람 가치를 구현하는 데 복무해야 한다는 이념 때문이다. 이같은 시도는 경제개방을 추구하는 실용세력과 젊은층의 신학문 갈구로 사실상 실패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거센 개혁요구는 집권보수파의 존립기반과 이슬람 신정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최근 이란 집권보수파의 이념적 강경책은 대학가에서 ‘이슬람적 가치’가 훼손되거나 흔들리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의 대표적인 개혁파 이론가인 사에드 하자리안가 최근 감옥에서 썼다는 이른바 ‘고백문’도 이란 집권층이 사상공세를 강화하는 촉매가 됐다. 이란 국영텔레비전의 전파까지 탄 이 ‘고백’은 포스트 구조주의와 맑시즘, 페미니즘 같은 이론들의 부정적 영향을 개탄하고 인문사회과학과 정치학을 장황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자리안의 고백은 또 “많은 비도덕적 행위들의 원인을 제공한 무가치한 이론들을 번역 소개하고 학문에 적용한 것에 대해 이란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이란 개혁파 지도부는 대선 시위 정국에서 수감 중에 나온 하자리안의 ‘고백’은 교도관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며 무시하고 있다. 이란 정치에 밝은 국내 대학의 한 교수도 “하자리안은 감옥에서 풀려난 지금도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며 “하자리안의 ‘고백’의 진위 여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마크 피츠패트릭 수석연구원은 “이란은 정권의 합법성 위기를 겪고 있으며, 그 위기는 점증하는 젊은 세대의 개혁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한다”며 “정권의 유일한 대응은 대학에서 사회과학 교육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란의 한 학자는 “현 집권층은 이란에 새로운 사상이 유입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며 “그런 시각이 그들의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