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 국제회의 협정 초안
‘10년 핵무기 갈등’ 첫 실마리
이란 수용여부가 관건
이란 수용여부가 관건
이란이 자신의 핵무기 개발능력을 1년 정도 유예하는 것에 잠정 동의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이후 미국의 최대 외교 난제였던 이란 핵개발 문제에서 미국은 시간을 벌면서 근본적 타결을 향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됐다.
2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과 미국, 러시아, 프랑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참석한 이란 핵 관련 국제회의에서, 이란은 보유중인 저농축 우라늄을 국외로 이송해,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용도로 농축해서 돌려받는 것을 뼈대로 하는 협정 초안에 동의했다고 <비비시>(BBC) 등 외신들이 22일 보도했다.
협정 초안은 이란이 핵활동으로 보유중인 1500㎏ 상당의 저농축 우라늄의 4분의 3을 러시아로 이송해, 의료용 동위원소 등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농축한 뒤 이를 다시 프랑스로 보내 연료봉 등으로 만들어 이란에 돌려주도록 했다. 이란은 핵발전소 가동으로 나온 저농축 우라늄을 고농축해 핵무기 원료로 개발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란이 보유중인 저농축 우라늄의 75%를 러시아로 보낼 경우, 남아 있는 저농축 우라늄 양으로는 핵무기 개발에 충분한 고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없게 된다.
이번 협정 초안이 양쪽 지도부에서 받아들여질 경우, 10년 넘게 끌어온 이란 핵무기 개발을 놓고 미국 등 서방과 이란이 첫 합의를 하게 된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약 1년 동안 지체시키는 시간을 벌게 되어, 이 기간에 좀더 근본적인 타결을 할 기회도 얻게 된다.
핵 전문가들은 협정 초안을 환영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마크 피츠패트릭은 이 방안이 “(이란 핵) 위기를 탈출하는 최선이면서도 아마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백악관도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백악관 관리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적 승리라고 자축하는 분위기라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이번 협정 초안은 수많은 난제를 풀어야 하는 먼 여정의 첫 출발일 뿐이다. 먼저 테헤란 지도부가 이를 승인해야 한다. 미국 협상대표단장인 대니얼 포니먼은 23일까지 이란이 협정 초안에 대한 승인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하마드 레자 바호나르 이란 의회 부의장은 22일 관영 <이르나>(IRNA)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이란이 오스트리아 빈 핵협상에서 마련된 합의안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바호나르 부의장의 발언이 이란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대선으로 분열된 테헤란 지도부가 핵개발 문제에 대한 합의를 신속히 도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협정이 조인된다 해도, 1년 안으로 근본적 타결책을 도출하지 못하면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란은 1년 안에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있는 저농축 우라늄을 다시 확보하기 때문이다. 또 이란은 이번 협정 초안에 상관없이 국내에서 우라늄 농축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를 ‘악의 축’과 ‘악의 화신’이라고 비난하던 미국과 이란이 머리를 맞대고 잠정 결론을 도출했다는 것 자체가 큰 진전이라는 평가다. 결국 양쪽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주창하는 적성국가와의 대화는 이제 비로소 궤도에 오르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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