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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소아마비 퇴치에 유엔-탈레반 묘한 협력

등록 2010-01-14 16:49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유엔의 후원을 받는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가가호호 방문하며 아이들에게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탈레반 세력이 강한 이 지역에서 이들이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반드시 지참해야 하는 것이 있다. 탈레반 지도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의 서명이 적힌 1장 짜리 전단이 그것이다.

탈레반의 영향력이 건재한 아프간 일부 지역에서 유엔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정부가 소아마비 퇴치 운동에 탈레반의 협조를 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넷판이 14일 보도했다.

미군과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도 소아마비 퇴치 운동에 관한 한 유엔과 아프간 정부, 탈레반의 묘한 협력체계가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효과를 보고 있는 이 협력체계의 상징인 오마르의 전단이 처음으로 발행된 것은 2007년 8월.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의 타히르 미르 박사는 당시 탈레반이 장악한 지역에서 소아마비 퇴치 운동이 어려움에 부딪히자 고민에 빠졌다.

자원봉사자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며 아이들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주민들의 명단까지 만들자 이들을 스파이로 의심한 탈레반이 자원봉사자를 폭행하거나 명단을 빼앗는 일이 종종 발생했던 것이다.

미르 박사는 고민 끝에 탈레반에게 협력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탈레반과의 협상에 중재자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탈레반으로부터도 중립성을 인정받고 있는 ICRC는 2007년 7월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23명이 풀려나도록 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탈레반 사이에서 중재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ICRC를 통해 WHO의 협조 요청을 받은 탈레반 지도부는 한 달 동안 고심한 끝에 이를 수락, 오마르의 서명이 적힌 전단을 발행해주기로 했다.

이때부터 WHO는 소아마비 퇴치 운동에 나설 때마다 탈레반이 발행한 전단을 수천부 복사해 자원봉사자들에게 지참시키고 있으며 이들은 보다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아직도 남아시아의 보수적인 성직자들이 미국 주도의 소아마비 퇴치 운동을 무슬림 어린이에게 독(毒)을 주입하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상황에서 아프간 탈레반이 보여준 협력은 이례적인 것이다.

파키스탄 탈레반 지도자 마울라나 파즈룰라도 지난해 여름 스와트 밸리 지역을 정부군에 빼앗기기 전 이 지역에서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불법화했었다.

유엔의 소아마비 퇴치 운동에 대한 아프간 탈레반의 협력은 주민 여론을 의식한 결과이자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놓인 3분의 1에 달하는 아프간 지역에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탈레반의 협력을 얻어야 하는 상황은 미국 등 서방 세계에게는 달갑지 않은 현실이다.

서방 국가의 한 외교관은 탈레반과의 협력체계가 "악마와의 계약"이라면서도 "그러나 이 계약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재 기자 ljglory@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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