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마드 레자 바크티아리 주한 이란 대사
30년간 지속된 적대정책 안바꿔
미사일은 공격용 아닌 자위수단
이란 민주주의 발전위한 노력중
미사일은 공격용 아닌 자위수단
이란 민주주의 발전위한 노력중
■ ‘이란혁명 31돌’ 바크티아리 주한 대사 인터뷰 이란은 지금 축제와 긴장이 뒤섞인 어수선한 분위기다. 오는 11일 이슬람혁명 31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이란 전역에선 ‘여명의 10일’ 축제가 한창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란 핵프로그램을 둘러싼 서방과의 팽팽한 대립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도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안으로는 지난해 대선 이후 거센 민주화 시위가 이어지면서 현 신정체제가 흔들린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모하마드 레자 바크티아리(사진) 주한 이란 대사에게서 이란을 둘러싼 안팎의 여러 현안들에 대한 이란의 입장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서울 동빙고동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이뤄졌다. ☞ 이란 이슬람혁명= 1979년 2월1일 오랜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루훌라 호메이니가 열흘간의 민중항쟁으로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가치에 기반한 신정일치 체제의 공화국을 세운 사건.
- 이란과 서방이 대립하는 지금의 국제정세에서 이란 혁명은 이란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31년전 아야톨라 루훌라 호메이니가 내걸었던 이란 혁명의 핵심은 자유, 독립, 그리고 이슬람공화국이었다. 이란 혁명은 이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었고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부분이 큰 이란 국민들로선 종교지도자가 혁명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팔레비 왕조 시대에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거의 없었고, 왕실은 국민들의 삶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란 혁명은 국민들이 그런 사실을 더욱 선명히 깨닫는 계기였고, 종교와 신에 대한 믿음으로 왕정을 붕괴시켰다. 혁명 이후 이란은 독립을 쟁취했다. 혁명 이전에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부족했고, 정치 경제 분야에 대한 서방의 간섭이 너무 컸다. 이란 국민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바크티아리 대사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런데, 이란혁명의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는데에만 10분이 넘는 시간을 할애했다. 이란어 답변의 한국어 통역 시간까지 포함하면 시간은 두 배 가까이 걸렸다. 첫 답변에 대한 통역이 끝난 뒤 대사에게 “답변이 너무 길다. 질문이 많으니 답변을 간명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질문이 민감하면 답변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심플한 질문을 하면 심플한 답변을 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본격 인터뷰에 앞서, 민감한 질문들도 많은데 성의있는 답변을 기대한다고 인사를 건넨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그렇다고 민감한 질문들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뼈있는 농담을 교환한 뒤 문답을 이어갔다. - 종교적 가치인 ‘이슬람’과 정치적 가치인 ‘공화국’이 어떻게 조화되는가? “코란은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간은 지상에서 알라(신)를 대표하는 존재이며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가르친다. 정교분리라는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 국가들도 많지만, 이란에서 종교적 믿음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포함한다.” - 이란의 핵프로그램이 국제사회의 핫이슈다. 이란은 평화적 핵주권을 주장하는 반면, 서방은 핵무기 개발을 의심한다. 그에 따른 긴장과 갈등도 심각한데? “1970년대에 한국이 미국과 핵개발과 관련해 거래가 있었듯이, 이란도 70년대에 미국 등과 계약을 맺고 경제발전을 위해 10여 곳의 핵시설 건설을 추진 중이었다. 그런데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서 핵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도 이란의 핵 플랜트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나 혁명 이후 계약이 파기됐다. 이란은 이후 30년 동안 이들 국가에 예전 계약의 시행을 요구해왔으나 반응이 없다. 프랑스의 한 핵관련 업체로부터는 우라늄농축원료인 6불화우라늄(UF6) 50~60톤을 받지 못했고, 우리가 주식 10%를 가지고 있지만 주주총회 참석도 가로막았다. 독일 지멘스도 이란의 핵개발 협력 요청에 반응이 없었다. 이란은 자체 연구와 교육을 통해 핵 관련 지식을 습득하면서 자체 프로그램에 따라 평화적인 핵활동을 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활동에도 협조해왔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방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란의 핵 활동을 트집 잡고 있다. 이란 핵은 군사적 목적이 아니다. 공업용과 평화적 에너지 사용 강조해왔고, IAEA와 협력해왔고, P5+1(유엔안보리 상임이사 5개국 + 독일)에서 요구하는 것 따라왔고, 신뢰를 주기 위해 할 일을 다 했는데, 서방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란은 핵 활동을 2년 동안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은 이란이 계속 다른 맘을 먹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예전에 중지했던 프로그램들을 재가동한 것이다. 여기에는 핵발전 외에 다른 목적이 있지 않다. 이란은 대량살상무기(WMD)와 군사 목적의 핵사용에 반대한다.” 바크티아리 대사의 핵 활동 중단 및 재개 언급은 이란이 2002년 콤 인근 지역에 핵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으나 2004년부터 2년 동안 중단했다가 2006년 건설을 재개한 것을 가리킨다. 이란은 지난해 9월 IAEA에 이 우라늄 농축시설의 존재를 알렸다. 바크티아리 대사는 핵 문제 해법에서 신뢰를 위한 쌍방의 실천과 역지사지를 강조했다. “P5+1이 핵협상에서 신뢰를 강조하는데, 이란은 신뢰를 얻기 위해 여러가지 말을 들어보고 NPT 조약을 준수해왔지만 서방이 전혀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협상에서 어느 일방만 상대를 신뢰하고 요구를 따르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협상에는 규칙이라는 게 있다. 협상의 양 당사자가 동시에 주고 받아야 올바르고, 신뢰가 쌓이지 않겠나.” -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는 어느나라에 대해서든 핵무기의 제조와 배치, 확산에 반대해왔다. 단 에너지를 위한 평화적 핵사용에는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딱딱하고 심각한 인터뷰 분위기를 잠시 돌리기 위해 이번엔 화제를 바꿨다. - 한국에 부임한지 2년 정도 됐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떠한가? “25년 전에 며칠간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와 비교하면 한국의 변화는 참으로 놀랍다. 경제 문화 사회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다. 한국이 자랑스럽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국민과 정부가 재건과 발전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인들은 정이 많고 존경할만하다. 이란과 한국은 자랑스런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양국 관계는 전통적으로 아주 우호적이었으며 지금도 좋은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음식도 훌륭하다. ” - 이란의 사하브3 등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도 이스라엘 등 주변국과 서방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은 자위 수단이지 공격용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란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증폭시키는 것이 서방의 정책이다. 왜 이란의 미사일은 문제 삼고 이스라엘이 보유한 200여기의 핵무기는 문제삼지 않는가. 중동 지역에 대한 외세의 개입과 간섭이 이 지역의 평화와 공존을 깨뜨리고 있다. 우리는 이에 반대한다. ‘이라노포비아’는 가공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난 2008년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에 대한 유엔 보고서가 나왔다. 그렇다면 국제사회는 이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데 외면하고 있다. 형평에 맞지 않다. 서방 강대국들이 양심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지난해 이란 대선은 부정선거 시비가 컸고, 잇따른 항의와 반정부 시위에서 10여명이 숨지기도 했다. 시위대와 야권 지도자들은 이란 정부가 개혁세력을 탄압한다고 비난하는 반면, 이란 정부는 시민들의 시위에 외세가 개입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란의 민주주의에 문제는 없는가? “이란에선 거의 매년 다양한 선거가 이뤄져왔다. 이란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징표다. 이슬람 혁명 이전(팔레비 왕조 통치)에는 불가능했다. 선거에서 최다득표자가 당선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대선 투표율이 80%를 넘었는데, 자유 선거에서 이처럼 투표율이 높은 경우는 드물다. 이란은 지금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연습과 실천을 하고 있다. 대선 이후 시위도 그런 차원이다. 그런데 반혁명 세력이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시위를 선동하기도 했다. 과격한 시위와 진압으로 국가의 재산과 사람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어느 정부든 국가와 국민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기본 질서를 지키려 한다. 시위세력과는 소통이 잘 안된 측면이 있다. 이란의 혁명반대 그룹들은 서방과 연계돼 있다. 톤다르(Tondar, 일명 이란왕국의회)라는 왕정복귀 운동단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두고 24시간 내내 반이란 선전을 한다. 반정부 시위 체포자 일부는 이 단체로부터 돈과 지도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 이웃 이라크에선 시아파 정권인 누리 알말리키 현 정부가 3월 총선을 앞두고 수니파 정치인들의 출마를 금지해 반발을 사고 있고, 미국은 이라크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밀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라크 총선과 내정은 이란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우리가 개입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지원하는 대상은 이란 국민이 원하는 것일 뿐이다. 이라크 정부는 이라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면 된다. 이란과 이라크 국민들은 오랜 옛날부터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교류해왔고 공통점이 많다. 이슬람 신앙이 양국 관계의 토대다. (외부 세계가) 왜 시아 이슬람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거나 보여주지 않고 다른 식으로 왜곡하는지 모르겠다. 시아 이슬람은 역사적으로 평화를 추구해왔고 종교적 믿음이 깊다. 서방이 수니파 이슬람의 우호관계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시아 이슬람의 우호에는 물음표를 달려는 의도가 무엇인가? 종교적 믿음에서 시아와 수니는 큰 차이가 없다. 시아-수니 이슬람의 갈등과 대립은 서방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슬람을 분열시키려고 과장한 측면이 있다.” - 이란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명, 풍부한 자연자원과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나라다. 그에 비해 국민들의 경제적 풍요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 이유와 대안은? “이란은 땅이 크고 인구가 많다. 자연자원과 에너지 자원도 풍부하다. 이란은 이를 토대로 경제발전 20년 계획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혁명 이후 30년간 서방이 주도한 경제 제재를 당해왔다. 그럼에도 이란은 착실히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이룩해왔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과거 팔레비 왕조 시절과는 비교가 안된다. 팔레비 시절 1인당 국민생산은 1000달러도 안됐지만 지금은 1만1000달러에 이른다. 더욱이, 경제적 수익이 왕가와 소수의 지배층에만 집중됐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경제 성장의 열매가 모든 국민에게 분배된다. 경제적 활성화는 사회의 다른 분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의 대학생은 25만명이었으나 지금은 대학생이 160만명이다. 혁명 이후 인구도 급증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적극적으로 이슬람 세계와의 화해 협력을 제안해왔다. 그에 대한 이란의 반응은 유보적이거나 소극적이다. 왜 그런가?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과 취임 직후까지도 이슬람과 적극적인 화해 협력을 언급했다. 그런데 취임 이후 정책을 보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예컨대, 만일 이란 같은 나라가 움츠린 주먹을 편다면 손을 내밀겠다고 했는데, 만일이라는 조건이 왜 들어가나? 미국은 왜 30년 동안 지속해온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조금도 바꾸지 않으면서, 이란의 변화만을 기다리고 있나? 미국의 정책 실무그룹은 지금도 이란에 대한 경제봉쇄를 굽히지 않고 있고, 그것이 먹히고 있지 않나.” - 21세기가 미국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이래 10년이 지났다. 이슬람에 대한 세계의 편견과 배척, 유럽의 이슬라모포비아도 심각해보인다. 이슬람(무슬림)에 대한 인상이 왜곡된 이유와 개선 방법은?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2001년 9·11 이후 심해졌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은 그 이전에 알카에다와 탈레반 등 이슬람극단주의 세력을 만들어주고 지원해왔다. 중동과 주변 지역에서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지원해 준 게 바로 서방이다. 중동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익에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러시아가 지배하다 쫓겨나자, 애초 서방이 (러시아를 축출하기 위해) 지원했던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다. 탈레반은 수니 이슬람의 극단주의자들이다. 이슬람 법을 잘못 해석하고 왜곡한다. 상상해보라. 탈레반 같은 집단에 돈도 주고 무기도 주고 정치적 지원도 제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방은 그런 식으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고 있다. 이슬람 세계는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 한국-이란 관계는 어떤가? 관계 발전을 위한 계획이 있나? “한국과는 오래 전부터 우호관계였으며, 꾸준히 관계가 발전해왔다. 문제가 전혀 없다. 특히 양국간 문화적 교류는 양국관계의 발전과 우호 증진에 이바지할 것이다. 이란은 2년전부터 이란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비자 발급을 간소화했으며, 이란 방문 한국인이 2배씩 늘었다. 이란을 다녀간 한국인들 상당수는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와 이란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곤 한다. 현재 용인 민속촌에 이란 전시관이 있지만, 이와 별개로 서울에 이란 문화센터를 개설할 계획이며, 이란 방문객을 위한 이란 관광정보센터도 개설하려 하고 있다.” 3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 바크티아리 대사는 민감하고 까다로운 질문들에도 시종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자국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동안 탁자의 찻잔들은 절반도 줄지 않은 채 식었지만, 달아오른 인터뷰 열기는 조금도 식지 않은 느낌이었다. 바크티아리 대사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탁자 위에 고스란히 놓여있던 이란 특산품인 피스타치오를 듬뿍 집어가라고 권했다. 글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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