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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베일쓴 이슬람 여성 풍자시에 기득권 ‘발칵’

등록 2010-03-25 13:44수정 2010-03-25 16:53

히사 힐랄이 지난 18일 아랍 전역에 생방송된 아랍 전통시 경연대회 예선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다.  아부다비국영위성텔레비전방송 제공. AP/연합뉴스
히사 힐랄이 지난 18일 아랍 전역에 생방송된 아랍 전통시 경연대회 예선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다. 아부다비국영위성텔레비전방송 제공. AP/연합뉴스
‘자작시 대회’ TV프로서 극단주의 폐단 비판
결선까지 올라…살해협박에 “숨지 않을것”
“파트와의 눈에서 악을 보았네/ 허용된 것들이 금기로 비틀어지는 때에

 진실의 얼굴에서 베일이 벗겨질 때마다/ 숨었던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

 나직이 읊조리는 시는 한 구절 한 구절이 폭탄이었다. 유려한 시어들은 전파를 타고 수구 이슬람 기득권층의 가슴에 비수처럼 내리꽂혔다. ‘파트와’는 이슬람 고위성직자들이 종교법에 근거해 발표하는 칙령이다.

 아랍권 전역으로 생방송되는 아랍에미리트 국영 텔레비전 방송의 인기 주간 프로그램인 ‘밀리언스 포이트’에서 베일에 가린 한 사우디 여성의 통렬한 풍자시가 결선까지 오르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밀리언스 포이트는 아부다비 문화유산 당국이 후원하는 아랍 전통시 ‘나바티’ 경연대회로, 우승자에게는 130만달러(약 15억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4남매의 어머니이자 평범한 주부인 히사 힐랄은 지난주 예선에서 눈만 빼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온 몸을 가린 검은색 전통의상 아뱌야 차림으로 ‘파트와의 대혼란’이란 제목의 자작시를 읊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사우디 소재 범아랍 일간 <알하야트>의 시 편집자를 지냈던 그는 시에서 일부 극단주의 성직자들과 자살폭탄테러자들을 빚대 “증오에 찬 목소리와 야만과 분노와 맹목에 쌓인 채/ (폭탄)벨트로 조여맨 예복으로 죽음을 입고 있네”라고 비판했다.

 시의 폭발력은 엄청났다. 3명의 심사위원들은 힐랄의 시에 최고점수를 주었고, 시청자들의 지지와 응원 메시지가 쏟아졌다. 심사위원 술탄 알아미미는 “힐랄이 극단주의를 선동하는 파트와에 맞서 경종을 울리는 의견을 정직하고 강렬하게 표현했다”며 “용기 있는 시인”이라고 호평했다. 힐랄은 24일 저녁(현지시각)에 생방송되는 결선에서 5명의 경쟁자와 최종우승을 가리며, 결과는 31일 발표된다.

 힐랄의 시는 그러나 이슬람 수구 기득권층의 민감한 뇌관을 건드렸고, 격렬한 후폭풍을 불러왔다. 알카에다의 메시지들이 공개되는 한 웹사이트에는 그를 살해하겠다는 위협들이 올라왔다. 심지어 힐랄의 주소를 알려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힐랄은 “그런 위협은 물론 두렵지만, 나를 숨게 할 만큼은 아니다”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에이피>(AP) 통신 인터뷰에서 “시는 내 자신을 표현할 뿐 아니라 우리 문화와 종교를 짓누른 자들에게 침묵을 강요당한 아랍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한 방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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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랄의 시는 지난달 사우디의 고위성직자 압둘 라만 알바라크가학교와 직장에서 남녀가 함께 지내도록 허용하는 자들에 대한 사형을 촉구한 칙령에 대한 비판으로도 해석된다. 사우디는 이슬람권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여성억압정책으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힐랄은 “(시에서) 알바라크를 특정하진 않았다”면서도 “믿음 때문에 사람을 죽일수 있다는 생각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 시의 메시지는 사랑, 연민, 평화다. 우리는 이 작은 지구에서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힐랄은 극단주의자들의 살해 위협보다는 이번 경연 이후 자신의 시와 생각이 확산되면서 ‘조용했던 가족의 삶’이 급작스럽게 변화할 것을 더 우려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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