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선정 등 대회준비서 자국민 뒷전…“긍지 짓밟혀”
온라인 표판매로 흑인 농민 등 아프리카 관중 소외돼
온라인 표판매로 흑인 농민 등 아프리카 관중 소외돼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마스코트인 ‘자쿠미’ 인형은 중국산이다. 공식 주제가 ‘와카 와카’는 콜롬비아 출신 팝스타 샤키라가 부른다. 공식 식당은? 맥도널드다.
3주도 채 안 남은 남아공월드컵(6월11일~7월12일)에서 남아공 사람들은 이처럼 소외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이 25일 보도했다.
남아공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흑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 입장권을 외국인보다 사기 힘들었다. 월드컵조직위가 입장권 판매를 주로 온라인을 통해 했는데, 남아공에선 일반적으로 인터넷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더라도 현금으로 입장권을 사려면 신청서를 써서 은행에 제출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남아공의 대표적 노동조합인 코사투는 “남아공 월드컵 관중은 주로 미국인, 유럽인 그리고 남아공 백인들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아공월드컵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연구하는 남아공 백인 질리언 샌더스도 “내 농장과 집에서 일하는 남아공 흑인 7명 중 온라인으로 입장권을 산 이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불만이 예상 외로 커지자 조직위는 지난달 15일부터 현장 창구 판매를 마지못해 시작했다. 신문은 이날 줄이 남아공에서 첫번째 자유선거가 열린 1994년 당시만큼이나 길었다고 전했다. 이후 현장 판매로 팔린 입장권은 23만장 가량. 사정은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남아공을 제외한 아프리카 사람들이 산 입장권은 애초 예상보다 77%나 적은 1만1300장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대륙 최초 월드컵이라는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남아공 사람들은 자국 음악인들이 월드컵 주제가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사실에도 자존심이 상했다. 남아공국영라디오방송(SABC)의 청취자 중 한 명은 “남아공 사람의 긍지를 짓밟고 우리 음악의 예술성을 모욕하는 국제축구연맹에 구역질이 난다”고 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은 국제적 행사이기 때문에 국제적 음악인이 주제가를 부르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남아공 음악인들은 항의의 표시로 ‘맞불 공연’을 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남아공 월드컵조직위는 장시간 토론 끝에 다음달 10일 열리는 축하공연 출연진에 트럼펫 연주자 휴 마세켈라와 소웨토의 복음성가단 등 남아공 음악인들을 추가했다. 남아공 월드컵조직위는 이 모든 과정에서 비난의 표적이 되어 왔지만, 할 말이 있다. 남아공 월드컵조직위 관계자 그레그 프레데릭스는 “이것은 우리의 월드컵이 아니라 국제축구연맹의 월드컵이다. 우리는 행사를 조직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만의 월드컵’이 되어가고 있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남아공적인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플라스틱 나팔 ‘부부젤라’가 남아있다고 전했다. 엄청나게 큰 소리 때문에 한때 사용 금지 논란이 일었던 부부젤라는 남아공의 모든 축구 경기에 쓰이는 대중적이고 남아공적인 응원도구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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