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이라크전 종전 선언…“우린 책임 다했다”
7년5개월 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전쟁 개시를 선언했던 백악관 오벌오피스의 바로 그 책상 앞에서 31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전 종전을 공식 선언했다. ‘유일 파워’ 미국의 힘을 과시하며 ‘명분없는 전쟁’을 밀어붙여온 데 대한 미국의 뉘우침은 찾기 힘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저녁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18분간의 연설에서 “미국과 이라크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책임을 다했으며, 오늘 미군의 전투 임무는 끝났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이라크 국민이 자기 나라의 안보에 대한 책임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 최대 17만1000명까지 늘어났던 이라크 주둔 미군은 앞으로 5만명 선을 유지한다. 남은 미군도 전투 임무가 아닌 이라크 군경 훈련이 주임무이며, 이들도 내년 말까지 완전히 철수한다.
오바마는 이날 이라크전을 끝내고,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막대한 비용을 치렀으며, 이제는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라며 “현재 우리의 가장 급박한 임무는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전에는 지금까지 7000억달러가 투입됐고, 이는 미국 재정적자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중동에서 2개의 전쟁을 치르던 미국은 이제 아프가니스탄에 집중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이라크에 남은 혼란과 전쟁이 불러왔던 찬반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승리했다”거나 “패배했다”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전쟁의 책임에 대해서도 “부시 대통령과 나는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며 매우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라크전이 전임자가 저지른 실패한 정책임을 암시하는 데 그쳤다. 더불어 그는 “자유세계의 리더로서, 미국은 증오와 파괴를 가져온 이들을 전쟁에서 물리치는 것뿐 아니라, 자유와 기회를 모든 이에게 넓히려는 이들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초 이라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량파괴무기를 명분으로 시작한 이 전쟁이 ‘진짜 할 가치가 있는 전쟁이었는가?’라는 국제사회의 근본적 의문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이라크전에선 그동안 10만명 이상의 이라크 민간인, 그리고 미군 4400여명 등 4700여명의 연합군이 숨졌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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