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에 살해위협 받거나
미군이 쏜 총맞아 죽기도
“후세인 정권때보다
자유가 더 없어졌다”
미군이 쏜 총맞아 죽기도
“후세인 정권때보다
자유가 더 없어졌다”
[미, 이라크 종전 선언]
록 음악을 좋아하는 28살 이라크 청년 라이트는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을 내심 반겼다. 라이트는 미국에 매료된 상태였고, 미군 통역으로 일자리도 얻었다. 그러나 미군 치하에서 7년의 세월을 보낸 뒤 그는 “미군 침공 뒤 자유가 더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고 <비비시>(BBC)는 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각) 전투 종료 선언을 하기까지, 평범한 이라크인들에게 미군이라는 존재는 어떤 이에겐 축복이었지만 또다른 이에겐 재앙이었다.
라이트는 미국을 알아갈 기회라고 생각했던 미군 통역 일을 2005년 그만두었다. 휴대전화로 살해 협박을 받은 뒤였다. “너는 지금 우리나라를 침략한 이들과 일하고 있다.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산 채로 매장당할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이라크에서 이런 협박은 말로만 그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최근 미군 통역으로 일했던 남성이 이슬람 무장단체 쪽에 가담한 아들에게 살해당한 일도 있었다. 라이트는 “후세인 정권 시절에는 공격당하지 않을까, 납치당하지 않을까, 폭탄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라이트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기대감이 실망을 넘어 분노로 바뀐 이도 많다. 8살 딸과 함께 바그다드 외곽 오두막에서 사는 제이나브 마유프는 <비비시>에 “남편은 미군에게 2005년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미군의 정지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총에 맞았다는 것이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을 때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 생각했다”는 제이나브의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미군은 제이나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보상금도 주지 않았다. 미군이 이라크전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7년 동안 이라크에는 제이나브 같은 과부가 수천명 나왔다.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라크 전투 종료 선언을 몇시간 앞둔 31일 “이라크는 주권국가이자 독립국가로 거듭났으며,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는 동등해졌다”고 선언했다. “이라크는 치안을 유지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날도 이라크에서는 로켓과 박격포 공격 경보가 세 차례 이상 들렸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