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20일 새벽 5시25분 걸프만의 미 순양함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발사되며 이라크전 개시.
미, 대량살상무기 못찾자 ‘민주화’로 명분 바꿔
포로 고문·학대 충격…내전·반미감정 격화도
지금 이라크엔 민주·평화는 없고 상처만 남아
포로 고문·학대 충격…내전·반미감정 격화도
지금 이라크엔 민주·평화는 없고 상처만 남아
[미, 이라크 종전 선언] 이라크전 재구성
2003년 3월20일 새벽. 미국과 영국의 폭격기들이 어둠에 잠긴 이라크 바그다드를 맹폭했다. 수천년 역사의 고대문명 유적지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공습 장면은 미국 <시엔엔>(CNN)의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가공할 화력을 앞세운 미군은 마치 오락게임을 하듯 전쟁을 압도했다. 불과 개전 40일만인 5월1일,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해군 1호기를 타고 전투복 차림으로 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내린 뒤 “이라크에서 주요 전투가 종료됐다”고 선언했다. 미군은 그해 12월 은신 중이던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까지 체포하면서 한껏 승리감에 도취했다. 전쟁이 이후로도 7년이나 계속될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2004년 4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촬영된 포로 학대 사진과 동영상들이 폭로됐다. 미군 병사들이 태연하게 수감중인 테러 용의자들을 발가벗겨 쌓아놓고, 개목걸이를 채워 끌고, 성행위 흉내를 강요하면서 찍은 이 ‘기념사진’들은 전세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선 물고문, 구타, 성적 모욕, 전기고문, 군견으로 위협하기 등 온갖 고문들이 자행됐던 사실이 추가로 폭로됐다. 2006년 8월, 미군은 3천명의 수감자를 다른 곳으로 이감한 뒤 교도소를 폐쇄했지만, 전쟁이 가져온 인간성 파괴의 참상마저 지울 순 없었다.
바그다드로 압송된 사담 후세인은 2006년 12월 사형선고 두 달만에 교수형으로 생을 마쳤다. 미국이야말로 사담 후세인 정권의 수립과 유지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미국은 1979년 이란 혁명과 냉전대결 시절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보호할 견제세력으로 후세인을 지지했었다.
‘대량파괴무기(WMD) 제거’라는 구실이 거짓으로 밝혀지자 미국은 ‘이라크 민주화’라는 새로운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라크 정국은 정파·종파·민족 갈등이 격화하면서 더욱 극심한 혼란과 분쟁으로 빠져들었다. 2008년에는 반미항전과 권력다툼이 뒤섞인 내전이 확대되면서, 이라크 미군의 심장부인 바그다드 ‘그린존’까지 공격에 노출되기도 했다.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지자, 2008년 미군은 대규모 증파를 통한 대공세(surge)를 벌였다. 이후 한동안 이라크 내 테러와 연합군 전사자는 눈에 띠게 줄었지만, 민간인 피해도 속출하면서 반미 감정은 더욱 거세졌다. 2008년 12월 이라크의 젊은 방송기자가 기자회견장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신발을 벗어던진 사건은 아랍인들에게는 통쾌함을, 미국에게는 모욕감을 선사했다. 경멸 대상을 겨냥한 ‘신발 던지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온라인 게임까지 등장했다.
미군 철군이 가시화한 2009년 하반기에는 폭탄테러가 더욱 극성을 부렸다. 그 해 8월, 10월, 12월에만 이라크 정부 청사들을 겨냥한 초대형 연쇄폭탄테러로 최소 400여명이 숨졌다. 2009년 초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공약대로 이라크 철군과 종전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라크에선 대량파괴무기(WMD) 뿐 아니라 민주와 평화도 찾아볼 수 없다. 이라크전은 ‘충격과 공포’(침공작전명)로 시작해 ‘위선과 혼란’의 수렁에 빠졌다가 ‘분열과 환멸’만 남긴 전쟁이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5월1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전투 종료 선언을 한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함상을 둘러보는 모습.
2009년10월25일 차량폭탄공격으로 파괴된 바그다드 법무부 청사.
2004년 4월6일 미 <워싱턴포스트>가 공개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내 미군의 이라크포로 성고문 및 학대 사진.
2006년12월30일 교수형이 집행되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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