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리포트- 제재 맞선 이란을 가다
테헤란 리포트-제재 맞선 이란을 가다 (상)
너도나도 “굿 코리아” ‘한겨레’ 부스 인파 넘쳐
대장금등 드라마 영향…한국산 전자제품 인기
관료들 “관계 변함없지만 제재는 불공정” 비판
너도나도 “굿 코리아” ‘한겨레’ 부스 인파 넘쳐
대장금등 드라마 영향…한국산 전자제품 인기
관료들 “관계 변함없지만 제재는 불공정” 비판
최근 1년여간 해외미디어 취재를 거의 허용치 않던 이란이 처음으로 문을 활짝 열었다. 단, 서구 주요 미디어는 입장불가. 지난달 25일부터 11월1일까지 이란 문화부가 테헤란의 모살라(이맘 호메이니 그랜드프레이어홀)에서 연 17회 국제 언론 및 뉴스에이전시 전시회엔 50여개국 75개 매체, 200여명의 외국기자들이 대거 초청됐다. 한국에선 〈한겨레〉가 유일했다. 극심한 경제제재에 맞서 생존의 길을 찾고 있는 이란의 현실과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행사장인 이란 테헤란의 못살라(이맘 호메이니 프레이어홀)에서 <한겨레>에 할당된 작은 전시 부스는 이란인들로 바글댔다. 신문·잡지·플래카드로 화려하게 치장한 ‘앞집’과 ‘옆집들’은 휑한 반면, 챙겨간 자료들이 첫날 순식간에 동이 난 한겨레 부스는 ‘대박’이 났다. 턱수염을 거뭇하게 기른 남성과 검은 차도르를 두른 여성들이 정말이지, ‘몰려왔다’. 아무 이유 없다. 그냥 한국인이어서다. 한국말을 한마디만 해달라며 엠피3에 녹음하는 젊은 남자부터, 자신의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이란 주부까지, 기자들은 주몽과 소서노 또는 양곰(장금)으로 불리며 수십컷 사진의 모델이 됐다.
지난 9월 미국 주도의 이란 경제제재에 한국 정부가 동참한 탓에 곳곳에 반미 구호들이 선연한 테헤란에서 미리 겁을 먹었던 기자들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수줍은 이들은 부스 주위를 뱅뱅 돌다 알 듯 모를 듯한 웃음만 남기고 지나갔다. 조금 용기 있는 이들은 엄지 손가락을 세워 “코레 주노비(남한) 굿 컨트리”를 연발했고, 자신의 한글 공부 자료를 들고 매일 부스를 찾아온 소녀도 있었다.
남북한을 비교하거나 “통일이 된다면 어떤 문제가 있겠느냐, <한겨레>의 입장은 뭐냐”고 좀더 ‘깊은’질문을 던진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국에 대한 호감은 거의 ‘맹목적’이었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이 가장 컸다. 2003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의가형제’를 시작으로 ‘대장금’‘주몽’‘상도’와 ‘이산’이 이란 국영방송 <아이아르아이비>(IRIB) 채널을 타고 잇따라 방영됐다. <한국방송>(KBS)의 ‘해신’(2006년)과 ‘바람의 나라’(2009년)도 이란인들을 만났다. 특히 ‘대장금’의 시청률은 90%를 넘었고, ‘주몽’도 신드롬을 일으켰다. 한 이란 남성은 “페르시아제국의 자부심을 지닌 이란인들은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한국 사극 주인공들에게 열광했다”며 “드라마가 끝나면 친구들끼리 모여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이야기하느라 바빴다”고 전했다. 한 젊은이가 주몽의 여주인공 ‘소서노’ 역의 한혜진씨와 결혼하겠다며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이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란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란도 왕조를 갖고 있었고, 서구 드라마에 비해 폭력적이나 성적 묘사가 없어 잘린 부분 없이 방영된 것도 인기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란에서의 붐은 이란과 긴밀한 관계의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프가니스탄과 짐바브웨에서 온 기자들도 “한국드라마를 다운로드받아 본다”고 말했다.
80년대부터 진출한 건설에 이어 자동차·전자 부문의 한국제품들이 이란인들에게 친숙한 것은 이런 붐에 배경이 됐다. 한국은 이란의 4대 교역국이다. 특히 소득에 관계없이 고급 전자제품을 선호하는 이란인들 사이 한국제품은 압도적 시장우위를 누리고 있다. 용산 전자상가에 해당하는 테헤란 시내 ‘주몰리 이슬라미’엔 3D 티브이를 광고하는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간판을 단 가게들이 한집 걸러 하나꼴로 있었다. 기아차와 현대차가 도로를 질주하고, 기아 ‘프라이드’를 본 뜬 ‘사바’는 가장 눈에 많이 띠는 차종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대 이란 수출은 연간 40억달러대에 이르고, 국내 기업들에게 이란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매출액 3위 안에 드는 중요 시장이다.
이들에게 한국의 경제제재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이란의 한 대학생은 “한국이 너무 성급하게 이란 경제제재에 동참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중동에서 이란은 한국의 핵심 시장이다. 한국이 왜 그렇게 미국의 요구를 서둘러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며 “이란도 한번쯤 고려해줬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이란 정부관계자의 말은 좀더 분명했다. 그는“한국이나 일본이 우리에게 이런 제재를 하는 것은 불법적인 것”이라며 “이런 제재로 손해는 7500만명에 이르는 거대 시장을 잃는 한국 쪽에 있지, 우리가 아니다. 중국제품 등으로 대체된다고 해도 우린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메흐디 가잔파리 통상장관은 한국 제재가 미치는 영향을 묻자 “양국 관계는 아무 것도 변할 게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냉전이 끝나고 이제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를 강제로 지배할 수 없다. 이번 제재에 많은 나라가 따르지 않는 것도 이것이 공정하지 않은데다 효과가 없기 때문”이라며 한국을 에둘러 비판했다.
이란에 진출한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사실 경제제재 동참 후 이란이 한국 기업에 눈에 띄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이란인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것에 비하면 한국이 이란을 대하는 태도는 불공평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테헤란/글·사진 이문영 김영희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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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한 소녀가 한겨레 부스를 찾아와 평소 자신이 한글을 공부하며 만든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이란의 주요 경제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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