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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생필품 보조금 폐지 ‘태풍의 눈’

등록 2010-11-10 09:00수정 2010-11-10 09:28

지난달말 이란 테헤란 못살라의 17회 국제언론전시장의 한 부스의 바닥에선 ‘미국을 타도하라’ 구호가 적힌 성조기를 볼 수 있었다.
지난달말 이란 테헤란 못살라의 17회 국제언론전시장의 한 부스의 바닥에선 ‘미국을 타도하라’ 구호가 적힌 성조기를 볼 수 있었다.
테헤란 리포트-제재 맞선 이란을 가다 (상)
이란 정부, 현금 지원으로 바꿔…반대 목소리 높아
테헤란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서울 거리는 한가하다 느껴질 정도로 극심한 교통체증과 매캐한 공기다. 길거리 곳곳에 걸린 아야톨라 호메이니와 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사진 사이로, 왱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와 매연을 뿜어내는 자동차들이 역주행과 급회전을 예사로 곡예 같은 운전을 한다. <테헤란 뉴스>는 최근 70만대 차량이 적절한 테헤란에 300만대의 차가 운행중이라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이란의 기름값은 리터당 한국 돈 100원에 불과하다.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덕이다.

“이제 차도 줄어들지 몰라요.”십년 넘게 이란에 살고있는 한 한국인인은 말했다. 미국 주도의 극심한 국제제재 한 가운데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정권은 지금 위험한 도박 같은 정책이행에 나서고 있다. 바로 이달로 예정된 보조금 폐지다.

정부가 정확한 숫자를 공개한 적은 없지만 이란이 전기, 기름, 밀가루 같은 생필품 등에 퍼붓는 보조금은 많게는 연간 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아마디네자드 정부는 앞으로 5년에 걸쳐 이 보조금을 폐지하고, 대신 국민들의 계좌로 직접 돈을 넣어주기로 했다. 문제는 대상층이 누구고, 얼마의 액수가 될지, 정확히 언제부터 보조금이 폐지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급진적인 경제변화 속에 기름값은 4배, 전기료도 몇배가 뛰는 등 극심한 인플레가 닥칠 것이란 소문이 돌며 테헤란은 술렁이고 경찰의 경비는 강화됐다.

중산층이 비교적 많은 어전틴 지역의 마트에서 만난 한 여성은 “물가가 오르면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모여있던 택시운전기사들도 “80만리알(8만원)이 이미 입금된 사람들도 있다는데 도대체 이게 몇달치인지 아무도 모른다”며 “국민의 90%는 반대할 것”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란 정부가 이런 조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정은 분명 있다. 이란 정부는 “서구의 제재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공언하지만, 낡은 시설에 대한 외국의 투자들이 어려워지며 이란 국부의 최대원인 원유 및 제품 생산량이 장기적으로 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세계에서 원유 매장량 2위라는 이란에서 주유소에 가면 20m씩 차들이 줄서있기는 예사다. 휘발유 제품의 부족에 가격통제 속에 별 이윤이 남지 않는 주유소를 운영하려는 이들이 적기 때문이다.

1979년 계급혁명이 아니라 상인(바자르)층 등의 지지를 끌어들인 종교혁명을 이룬 이란에선, 재정확보에 필수인 부가가치세를 비롯한 세금을 올리기 쉽지않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200년 역사가 넘는 테헤란바자르에서 만난 한 금 거래상인은 불만부터 털어놨다.“옛날엔 바자르가 사흘 파업하면 장관이 바뀌고 닷새 파업하면 왕이 바뀐다는 말도 있었지만 이 정권은 열흘을 넘게 파업해도 꿈쩍않는다”며 “혁명 당시 바자르가 많은 자금을 지원하고 도왔는데 이제 우리가 모았던 것을 다 빼앗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불만은 서민층 위주의 정책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는 현 정권 들어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테헤란의 한 대학생은 “이번 조처는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옹호하며 “결국 시장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최근 보조금 개혁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인내를 호소하며, 보조금 폐지를 이유로 가격을 제멋대로 올리는 업체들을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경고했다.

옆에 있던 또다른 대학생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누가 밑의 서랍을 빼봐라. 다시 굴러떨어져서 처음부터 오를 수밖에 없다. 이란은 그런 꼴이다”라고 말했다. 수퍼마켓에서 만난 직장인들은 제재에 대해 “미국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란이 아프리카나 아프가니스탄 등에 원조를 쏟아붓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란-이라크 8년 전쟁 등을 겪었던 이란인들은 외세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했다. 핵개발에 대해서도 “적들에 대한 억제력으로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지난해 6월 대선 부정논란으로 벌어졌던 시위 이후 서구는 이란의 또다른 혁명 가능성에 주목해왔다. 하지만 한 택시운전기사는 고개를 저었다.“혁명 이후 우린 모두 투잡을 뛰게 됐다. 먹고 살기가 너무 바빠 혁명을 생각하기도 힘들다. 아마 변화가 있다면 정권 내부의 갈등에 의한 결과뿐일 거다”라고 그는 말했다.

혁명의 흔적은 화폐마다 들어있는 호메이니의 얼굴과 1980년 점거됐던 미국대사관의 벽에 남은 해골형상의 자유의 여신상 그림에선 여전했다. 하지만 의문은 떠나지 않았다. 종교는 이란의 현실을 해결해줄까.

테헤란/김영희 이문영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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