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들 페이스북·트위터 통해 결집·확산
지도자 없고 익명 호소…정부 뒤늦게 차단
지도자 없고 익명 호소…정부 뒤늦게 차단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에 이집트인 8만5000명이 25일(현지시각) ‘분노의 날’ 시위에 참가하겠다고 약속을 했을 때만 해도 호스니 무바라크(83) 대통령이 이 정도의 위기를 맞으리라 예상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로에서 시작된 ‘분노의 날’ 시위는 27일까지 사흘째 전국으로 확대되며 세습까지 노리던 무바라크 왕조 정치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주간 <타임>은 이집트에서 ‘페이스북 혁명’이 진행중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오랜 철권통치로 야당 등 대안적 정치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의 행동주의’가 이집트 역사에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집트 인구 중 30살 이하 젊은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데, 이들은 이집트 전체 실업자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김정명 연구위원은 “이집트의 낙후한 상황에 대한 젊은층의 자괴감이 큰 반면, 문화적 수준과 사회의식은 높고 인터넷도 별 제약이 없으며 개방적”이라고 말한다.
이번 이집트 시위의 특징은 최대 야당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공식적 참가를 거부한 가운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들에겐 지도자도 없고, 시위를 조직한 이들은 경찰의 체포를 피해 익명으로 남아 있다. 인터넷을 통해 시위를 조직한 젊은 활동가들은 이데올로기적 주장 대신, 민주주의, 사회정의, 부패와 고문의 종식 등을 내세운다. 한 익명의 조직자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내일 밤 내가 어디 있을지 나도 모른다. 집에 있을지, 거리에 있을지, 감옥이나 무덤에 있을지. 그러나 내 권리를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것만은 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시위를 조직한 그룹은 2004년 무바라크의 장기 집권에 항의해 만들어졌던 ‘케파야’(‘이제 충분하다’라는 뜻)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07년 4월6일 청년그룹’도 이번 시위를 조직하는 데 한몫했는데, 이들은 지난해 여름 알렉산드리아에서 경찰에 두들겨 맞아 사망한 젊은이를 추모하는 침묵시위를 조직한 전력이 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이집트 정부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차단하는 등 조처를 취했지만, 때는 늦은 것으로 보인다. 카이로 중심가의 타흐리르광장에 붙은 한 포스터에는 “이것은 인티파다(항쟁)다. 실질적 변화가 이뤄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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