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분노에 집권층 균열 조짐
정국 어디로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가 28일(현지시각) 최고조에 달하면서 무바라크가 야당 인사 등에 대한 구속 가택연금과 함께 통군 투입과 야간통행 금지라는 초강수를 내놨다.
1977년 이후 처음이자 최대의 반정부 시위상황에 직면한 이집트 집권층 내의 위기의식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의 일간 <알메스리운>은 ‘분노의 날’ 시위가 처음 벌어진 25일 호스니 무바라크(83) 대통령이 내각의 주요 각료들과 정보기관장, 집권여당인 민족민주당(NDP) 지도부가 참여한 고위대책회의를 소집했다고 27일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주요 각료 한 명은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둘째아들 가말(47)을 오는 9월로 예정된 대선의 여당 후보로 지명할 계획을 철회하고, 30년간 임명하지 않았던 후계 자리인 부통령에 군 출신을 임명할 것 등을 건의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집트 집권층 내부에서도 일정 정도의 양보 없이 국민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실제 실행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는 집권층 내부에서 지난해 담낭제거수술까지 받은 노쇠한 무바라크 일가에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무바라크의 정권 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가말 등 집권여당 주요 인물들이 탈출했다는 소문이 시위 와중에 퍼진 것도 집권층 내의 불화 과정에서 흘러나온 것이란 분석이 있다.
단순히 식료품값 급등에 반발해 일어났던 1977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당시 시위와는 달리, 이번 시위에선 장기 철권통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부와 정보기관, 경찰력을 장악하고 있는 무바라크 정권에 맞서기엔 아직까지 시위의 구심점이 확실치 않다. 시위 초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해왔던 젊은층 조직연합체인 ‘4.6 청년운동’이나 이날 시위에 가세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무슬림형제단 등이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전면에 나서게 될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28일의 이집트 시위는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면서 무바라크로 하여금 더는 경찰력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무바라크는 이제 군의 충성도에 정권의 운명을 걸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아들 가말로의 직접 세습 구도논의가 나오던 지난해 초 이후 군부가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여당 쪽에선 오마르 술레이만(74) 정보국장이나 전 공군참모총장인 아흐메드 샤피크(70) 민간항공장관 등을 후계로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무바라크와 공동 운명체로 움직일지는 분명치 않다. 게다가 사미 아난 군참모총장이 시위 기간 중 군 대표단을 이끌고 워싱턴을 방문한 상황에서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무바라크 정권에 정치개혁을 통해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군이 전면에 나서는 데는 제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정보분석기업인 <스트랫포>는 1952년 나세르의 군사쿠데타 집권 이후 정권을 장악하고 지탱해온 이집트 군부가 ‘재스민 혁명’이 성공한 튀니지처럼 시위대 편에 동참할 가능성은 오히려 낮다고 전망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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