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해산 않고 중립태도…정국 향방에 최대변수
탈출구 찾는 무바라크에 얼마나 시간줄지 촉각
탈출구 찾는 무바라크에 얼마나 시간줄지 촉각
호스니 무바라크(83) 대통령의 유화책이 불발에 그치면서, 이집트 군부가 향후 정국의 향방을 가늠할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29일(현지시각) 군의 태도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됐다. 무바라크 정권은 시위 진압에 전차와 장갑차 등 중무장 병력을 투입했지만 군의 발포는 물론, 시위대 해산도 없었다. 오히려 군 병력이 거대한 민심의 바다에 파묻힌 모양새다. <에이피>(AP) 통신은 30일 “이는 군부가 정권과 시민 사이에서 중립성을 보여주려는 명백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앞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도 군부의 중립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50만명에 이르는 이집트 군부는 국민들에게 상당한 신뢰와 존경심을 받고 있다. 대다수 다른 권력집단과 달리 부패가 가장 덜하고 효율적이란 평가를 받는데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승리한 전과가 전체 아랍세계의 자존심을 세워줬기 때문이다. 당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혀, 1969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때의 참패를 되갚았다.
무바라크가 29일 내각을 해산하고 부통령과 총리에 군 출신인 오마르 술레이만 정보국장과 아흐메드 샤피크 민간항공장관을 각각 발탁한 것은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이용해 사태를 무마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이집트 군부와 미국도 술레이만을 차기 지도자로 점찍고 있었으나, 무바라크가 최근 몇년 새 아들 가말에게로 권력세습을 추진하면서 군부와 알력을 빚어왔다.
무함마드 후세인 탄타위 전 국방장관과 사미 아난 군참모총장도 향후 정치과정에서 눈여겨볼 인물들이다. 이들은 28일 미국에서 양국간 국방회담 도중 급거 귀국했으나 다음달 3일 미국 쪽과 다시 만나기로 해, 미국과 이집트 군부가 사태 해결 방안을 긴밀히 협의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집트 군부가 무바라크에 대한 지지와 시위대의 요구사항 수용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집트 군부는 일단 무바라크에게 정치적 탈출구를 마련할 시간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바라크의 퇴진이 이번 시위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점에서 무바라크가 물러나지 않는 한 시위가 잦아들 가능성은 없다. 이런 점에서 군이 무바라크에게 얼마나 시간을 주게 될지는 관심사항이다.
이집트 국민들은 군부에 대한 신뢰와는 별개로, 무바라크 정권에 참여한 군 출신 인사들을 끌어들여 위기를 넘기려는 것에 반감이 크다. 한 시민은 “술레이만이 무바라크에 의해 임명됐다면, 그는 또 한 명의 깡패조직원일 뿐”이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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