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무바라크’ 뜻 밝혔지만 퇴진요구는 안해
클린턴 “소수그룹이 권력잡는 것 원치않아”
AP “미국, 시민편도 친미정권편도 못들어”
클린턴 “소수그룹이 권력잡는 것 원치않아”
AP “미국, 시민편도 친미정권편도 못들어”
미국의 복잡한 속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집트 정부에 “질서있는 전환”을 요구해 사실상 정권 교체 지지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29~30일(현지시각)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터키·영국 정상들과 전화회담을 통해 이집트 상황과 해법을 논의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당사자들이 폭력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밝히면서 “이집트인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정부로의 질서있는 전환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런 입장은 “보편적 인권과 정치 개혁을 위한 확고한 조처를 지지한다”는 29일의 백악관 성명에 비하면 상당히 반 무바라크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30일 미국 방송들과의 인터뷰에서 “질서있는 전환”을 요구해, 미국이 이집트의 정치체제 변화로 방향을 잡았음을 재확인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한 참모는 “무바라크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미국의 압박과 간접적 개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은 같은 날 사미 에난 이집트 합참의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이집트군의 직업정신에 사의를 표했다”고, 존 커비 미국 합참 대변인이 밝혔다. 카이로 시내에 배치된 군이 진압에 나서지 않은 점을 칭찬한 것이다. 미군 최고지휘관이 대놓고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 셈이기도 하다. 미군과 이집트군은 연간 15억달러 안팎의 군사원조를 매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그러나 반미정권을 탄생시킨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의 반복을 우려라도 하듯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 요구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이 그의 즉각 사퇴인지, 오는 9월로 예정된 대선 불출마인지도 애매하다. 백악관은 “미국이 이집트를 지도할 입장에 있지 않기 때문”에 더 구체적인 메시지를 내놓을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고민 중에는 누가 시위 정국의 승자가 될지 뿐만 아니라, 새로 창출될 정치권력이 미국에 비우호적일 가능성도 들어있다. 클린턴 장관은 “우리는 이집트 사회의 다양성을 온전히 대표하지 않는 소수 그룹이 권력을 잡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슬림형제단처럼 이슬람주의적이거나 반미주의적 성향의 정파가 권력을 잡으면 안 된다는 말로, 미국이 말하는 “질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에이피>(AP) 통신은 30여년 전 이란에서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 편을 들기도, 그렇다고 친미적이지만 대중의 지지를 잃은 정권을 비호할 수도 없었던 “도덕적 난제”가 다시 미국에 던져졌다고 분석했다.
한편 서구의 다른 주요국들도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등 갈수록 그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30일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결사의 자유 보장을 촉구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유혈진압을 비난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자유와 인권 존중을 촉구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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