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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해방’ 광장의 시민들 “이것이 진짜 이집트”

등록 2011-02-07 20:01수정 2011-02-08 08:27

이집트 카이로의 다흐리르 광장 주변에 있는 탱크와 군인들에게 6일(현지시각) 이집트 시민들이 마치 기념사진을 찍듯 휴대전화기와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다. 카이로/조일준 기자
이집트 카이로의 다흐리르 광장 주변에 있는 탱크와 군인들에게 6일(현지시각) 이집트 시민들이 마치 기념사진을 찍듯 휴대전화기와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다. 카이로/조일준 기자
타흐리르 ‘민주주의 용광로’
밤늦도록 구호화 음악소리
상당수가 가족단위 ‘희망행렬’
담요 한장으로 노숙시위도
[조일준 기자의 이집트 통신]

“이것이 진짜 이집트다.”

6일 오후(현지시각) 이집트 카이로. 나일강에 인접한 타흐리르(해방)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광장은 모든 기대와 희망, 구호와 표현이 분출하는 축제의 공간이었다. 남녀노소, 신분과 종교의 차이를 ‘이집션’(Egyptian)이라는 하나의 동질성으로 녹이는 용광로였다. 이날 있었던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야권 세력의 대화에 대해서 적잖은 사람들은 ‘정권이 흔들리고 있는 징조’라고 반기면서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 빠진 데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시위대는 “무바라크는 끊임없이 약속을 내놓고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라고 극도의 불신을 드러내며, “지금 당장” 퇴진을 촉구했다. 사람들이 점점 불어났다.

주변에 집권당 당사와 정부청사, 의회와 박물관 등이 밀집한 이집트의 심장부,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하는 길목엔 철조망 뒤로 탱크와 장갑차, 불탄 승용차들로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그 옆의 좁은 통로로 시민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군인과 자원봉사자들은 일일이 신분증과 소지품을 확인했다. 지난주 유혈충돌을 일으킨 친정부 시위대나 사복경찰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란다. 한 자원봉사자는 “군인들은 우리를 보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광장에 들어서자 시민들은 너나없이 낯선 동양인 기자에게 “웰컴 투 이집트”라는 인사를 건네고 등을 두드려줬다. 아랍어로 적은 구호와, 무바라크를 히틀러나 뱀파이어로 풍자한 포스터들을 든 시민들도 앞다퉈 기자의 카메라 앞에 섰다. 시민들과 인터뷰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어 말을 쏟아내거나, 옆사람에게 자기 말을 영어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거침없이 ‘코샤리 혁명’을 얘기했고, 표정엔 낙관과 결의가 묻어났다. 코샤리는 콩으로 만든 이집트 전통 음식이다.

마무드 압델아지즈(25·약사)는 능숙한 영어로 “우리는 자유를 원하며, 무바라크를 심판하기를 원한다”며 “무바라크 개인뿐 아니라 정권을 유지해온 시스템 전체가 물러나야 한다. 우리는 이집트를 사랑하며 자유선거를 통해 법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청년은 “이날 하루에만 광장에 200만명이 모였는데 관영언론은 150명이 모였다고 보도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변에선 리듬을 탄 구호가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떠나라, 떠나라, 떠나라!”, “무바라크 고 아웃!”, “우리는 당신이 필요 없다!”

여성과 어린이, 가족 단위로 나온 시민들도 많았다. 고운 색깔의 히잡을 두른 젊은 여성들은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10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어린이들도 기자에게 다가와 “무바라크 동키!”라고 외쳤다.


이곳에서 무바라크는 아이들에게조차 ‘어리석은 당나귀(donkey)’에 빗대어질 만큼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광장 한편에는 모의 교수형을 당한 무바라크의 인형이 허공에 목매달린 채 흔들거렸다. 시민들은 “우리는 평화적 민주화와 새로운 나라를 원하며 누구의 죽음도 원치 않는다”고 입을 모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 무바라크는 이미 지워져 있었다.

친정부 시위대의 습격으로 숨진 시민들의 얼굴 사진이 실린 현지 신문들도 나돌았다. 한 청년이 기자의 얼굴에 빨강 하양 검정의 이집트 삼색국기가 펄럭이는 페이스페인팅을 해주자,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이젠 당신도 이집트인”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거나 앞다퉈 카메라를 들이댔다.

관영 학교의 영어 교사인 에마드 마무드(36)는 “사람들이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 조금도 힘들거나 배고프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집트 상황에 대한 나라밖 언론의 보도와 <한겨레> 기자의 시각을 궁금해했다.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 경험을 간단히 말해주자 시민들은 뜻밖이라는 듯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서 온 게 맞느냐. 독재정권이 쫓겨나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시위를 했느냐”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우리는 석 달이 아니라 100년이라도 계속한다. 무바라크가 권좌를 지키면 우리도 여기를 지킨다”고 말했다.

저녁 7시. 통금시간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장에선 새벽 1시가 넘도록 격정적인 연설과 구호, 흥겨운 음악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밤이 깊으면서 제법 한기가 돌았지만 수많은 시민들은 여기저기에 텐트를 치거나 담요만 몸에 두른 채 바닥에 몸을 뉘었다. 한 중년 남자는 기자에게 밤하늘을 가리키며 “알라(신)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문제없다”며 웃어 보였다.

카이로/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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