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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시민들 더 나은 삶 원해 9월 대선까지 못기다려”

등록 2011-02-09 20:28수정 2011-02-10 09:51

조일준 기자의 이집트 통신
조일준 기자의 이집트 통신
[조일준 기자의 이집트 통신] ‘보통 사람들’ 만나보니

“300여명 사망해 너무 비싼 대가”
타흐리르광장 가는 행렬 장사진
“인터넷·외국방송 통해 진실 알아”

8일 낮(현지시각)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하는 시민들이 나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너편까지 1㎞ 넘게 줄을 섰다. 오후 3시가 넘어서면서, 통금 시간과 교통 정체 탓에 일찌감치 일을 마친 직장인들까지 사방팔방에서 합류했다. 벌써 보름째다.

대학을 졸업한 전기 기술자 무함마드 무르쉬(24)도 그줄에 있었다. 한살배기 아들이 있다는 그의 한달 수입은 3500 이집트파운드(약 70만원)다. 그것으로 세 식구가 살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모든 이집트인이 더 나은 삶을 원한다. (이번 시위와 유혈 진압으로)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너무 비싼 대가를 치렀는데 9월 대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이번 시위에 영향을 주었냐고 물었다. “물론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과 외국의 영어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고 정보를 얻는다. 우리는 정부와 관영 언론의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

옆에 있던 알리(23)라는 친구가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광장에 모이는 수십만명이 모두 인터넷을 보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청년세대든 나이 든 세대든, 인터넷 사용자이든 아니든, 무바라크 퇴진과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이집션이다.” 그는 중등학교를 졸업한 뒤 2년째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의 잡화점 가게 운영을 돕고 있다.

광장 앞에는 거리 행상들이 대목을 만났다. 구운 감자, 커피, 빵과 음료수 등 먹을거리와 이집트 국기를 파는 좌판이 많았다. 길 옆에선 오십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어린 소년과 함께 빨강 하양 검정색의 좁고 기다란 천을 50㎝ 길이로 쉼없이 자르고 있었다. 이집트 삼색국기 머리띠였다. 1개에 1파운드, 우리 돈으로 200원이다. 한 아낙은 10파운드라며 기자에게 이집트 국기 하나를 내밀더니, 고개를 가로젓자 곧장 5파운드로 값을 낮췄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카스르 알밀 다리를 건너 기자지구 쪽으로 가자 풍경은 달라졌다. 보행자가 다니는 길에 멍석을 깔고 구걸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10살도 안돼 보이는 어린 소녀가 껌을 사 달라며 팔을 붙잡았고, 가게 앞 상인들은 앞다퉈 들어와보라고 손짓을 했다.

무함마드 아부스리야(58)도 광장에 가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2남2녀에 손자 5명까지 대가족의 생계에 힘을 보태려 회사 택시를 운전하기 때문이다. 오후 5시께 카이로 공항까지 기자를 태운 그는 서툰 영어로 “유 퍼스트 투데이(당신이 오늘 첫 손님)”라고 말했다. 그는 “한달에 미화로 200달러(약 23만원) 정도 번다”며 “아임 베리 푸어(I’m very poor)”라고 했다. 그의 수입이 이집트 국민의 평균 소득(2010년 1인당 국내총생산 2759달러)수준이다.

조심스럽게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곧장 “나쁜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바라크가 우리의 돈을 훔쳐갔어요. 물러가야 합니다.” 다음 지도자 감으로 누가 좋으냐는 물음에 “아무드 무사, 넘버 원”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술레이만 베리 굿 맨, 엘바라데이도 굿 맨”이라고도 했다. 이유까지 묻기엔 그의 영어가 너무 짧았지만, 변화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기엔 충분했다. 이집트의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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