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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군 ‘9월까지 자리만 유지’ 발표에도 시위대들 쏟아져나오자 전격 사임

등록 2011-02-12 04:10

무바라크 왜 무릎꿇었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철권통치는 결국 피플파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퇴진 요구 시위에도 꿈쩍않던 그를 몰아낸 것은 결국 독재정권이 던지는 미끼를 물지 않고 즉각 퇴진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굽히지 않은 이집트 국민들의 역사적 결단이었다.

무바라크가 사임 성명조차 직접 발표하지 못하고 대리인 격인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을 통해 ‘퇴장’을 선언한 11일(현지시각), 하루 내내 상황은 유동적이었고 불투명했다. 무바라크는 전날 이미 사임할 것이라는 측근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예상을 보란듯이 부인하면서 “헌법 수호”를 위해 자리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대신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대통령 권한을 위임해 자리는 지키되 통치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타협책을 제시했다.

반 무바라크 진영은 이 또한 그의 얄팍한 생존술이라고 치부하고 비타협적 자세를 고수했다. 무바라크는 이미 시위 발발 이후 내각 교체와 부통령직 신설, 개헌위원회 구성, 시위 진압 진상조사 등의 양보 조처를 잇따라 내놓으며 민심을 저울질했다. 그 때마다 시위대는 “노”를 외치며 투지를 접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11일은 ‘운명의 날’로 운명지워져가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전날 무바라크의 입장 표명에 모호한 점이 있다며 분명한 설명을 요구하고 나섰고, 미국 주재 이집트 대사는 직접 <시엔엔>(CNN)과 접촉해 “술레이만 부통령이 사실상 대통령”이라고 설명했다. 하야 거부가 아니라 부통령으로의 권한 이양이 무바라크의 주된 메시지라고 주장하면서 여전히 ‘명예 퇴진’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날 마지막으로 무바라크를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은 군부였다. 전날 “국가 수호를 위해 필요한 조처를 취하겠다”는 내용의 ‘코뮈니케 1’을 발표한 바 있는 군부는 이날도 탄타위 국방장관 주재로 20여명의 수뇌가 참석한 최고회의를 연 뒤 무바라크 대통령의 개혁 방안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군부는 △무바라크가 9월 대선 때까지는 자리를 지키되 대통령 권한은 술레이만 부통령이 행사하고 △시위 상황이 가라앉으면 긴급조처법을 해제하며 △공정하고 자유로운 대선을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하며 시위대에는 해산을 종용했다.

군부의 이런 입장은 시위대를 실망시켰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제 군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이집트 야권은 더 큰 저항만이 무바라크를 몰아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거듭 기만적 술책으로 자리를 보전하려는 무바라크에게 염증이 날대로 난 시민들은 타흐리르 광장으로 쏟아져들어왔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타흐리르 광장에만 100만명, 전국적으로는 수백만명이 무바라크를 마지막으로 몰아붙이려고 나섰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시위대가 점점 불어나는 가운데 무바라크가 가족과 함께 헬리콥터 2대에 타고 시나이반도의 홍해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로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때까지만 해도 무바라크가 사임할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자신은 대통령 자리를 형식적으로 유지할 뿐이라는 입장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불과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무바라크는 백기를 들고 만다. 무바라크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한 데에는 거리로 쏟아져나온 시민들의 규모나 그들의 결의가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위 과정에서 두 차례 큰 집회가 있었지만 대략 25만명 안팎이 참여했는데, 11일 시위는 규모부터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더구나 대통령궁 앞으로 시위대가 몰려가면서, 무바라크는 관저를 둘러싼 탱크와 철조망에 의존해 정권을 지킬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무바라크가 정확이 언제 사임을 결심했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이날 홍해 휴양지로 떠날 때부터 사임을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영 텔레비전은 사임 발표 두시간여 전부터 이미 “중대 발표”를 예고한 상태였다.


카이로로 다시 돌아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는 무바라크가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는 불확실하다. 샤름 엘셰이크 휴양지의 고급 골프리조트는 무바라크가 자주 들렀던 곳으로, 그가 외국 정상들을 가끔 만나온 곳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가 거의 폭력성을 띠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그가 계속 국내에 머물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하지만 30년 독재 끝에 쫓겨난 것과 다름없고, 천문학적 액수의 부정부패와 무자비한 시위 진압 등의 문제도 있어 말로가 편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무바라크가 독일에 호화병원 병상을 예약해뒀다는 보도도 나온 상태다.

이본영 류재훈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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