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동·아프리카

[긴급기고] 무바라크 없지만 무바라크체제 진정한 이집트혁명 아직 아니다

등록 2011-02-14 20:13수정 2011-02-16 11:02

조지 카치아피카스
조지 카치아피카스
조지 카치아피카스 미국 웬트워스공대 교수 기고
술레이만·군부, 권력 유지땐
‘이집트판 노태우정권’ 우려
세계인들이 민중 봉기로 역사적 승리를 쟁취한 이집트 혁명을 반기고 있다. 하지만 위대한 승리에 대한 도취는 오마르 술레이만과 군부가 최고권력으로 부상해 무바라크의 전제적 체제가 타격을 입지 않고 심지어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오도하게 만든다. 차분하게 보자면 적어도 지금 “이집트 혁명”이라는 평가가 정확한지 의문이 생긴다.

민중봉기로 오랜 독재정권을 몰아낸 사례들 중 특히 한국의 1987년 6월항쟁을 떠올리게 된다. 이집트에서처럼, 6·29선언을 발표한 것은 독재정권의 2인자였다. 노태우씨는 야권이 분열하고 부정투표 시비가 제기된 가운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한국인들의 기대와 낙관은 쓰디쓴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노씨도 술레이만처럼 미국의 오래된 자산이었다.

노씨는 가혹행위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지만, “카이로의 시아이에이(CIA) 맨”이라는 술레이만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인계한 테러 용의자 고문에 직접 관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민 맘도 하비브는 고기 걸쇠에 매달린 상태에서 뺨을 맞아 눈가리개가 날아갔을 때 자신을 때린 술레이만의 얼굴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븐 알셰이크 알리비라는 사람은 이집트 정보부에서 고문을 당하자 알카에다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부가 연결돼있다고 진술했다. 이 거짓 자백은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이라크를 공격해야 한다고 설득할 때 제시한 가장 중요한 주장이 됐다. 알리비는 진술을 번복하겠다고 한 직후 리비아 감옥에서 자살한 것으로 처리됐는데, 마침 술레이만이 리비아 트리폴리를 방문하고 있던 때였다.

1986년 필리핀의 경험도 이집트에 교훈이 될 수 있다. 피플파워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망명길로 내몬 지 1년도 안돼 코라손 아키노 정권은 시위에 나선 무토지 농민 21명을 살해했다. 타이 학생들은 1973년 77명이 총탄에 쓰러진 뒤에야 군사독재를 끝냈지만, 2년간의 휴지기 뒤에 군부는 학생 수십명을 살해하고 다시 독재를 시작했다. 네팔에서는 1990년 62명이 숨진 50일간의 투쟁 끝에 입헌군주정이 들어섰지만, 왕실은 몇년 만에 절대권력을 되찾았다. 2006년 군주 폐지 과정에서 다시 시민 21명의 희생이 필요했다.

이집트에서 쓰러진 시민 300명의 피가 1980년 광주의 순교자들 것처럼 자유의 나무에 물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단지 이집트의 정경유착을 대체할 미국 은행들과 세계적 대기업들이 많은 이윤을 즐기도록 기름칠을 해주는 데 그칠 것인가? 무바라크가 없더라도 그의 군사령관들과 정보기관 수장이 권력을 장악한다면 혁명 같은 것은 일어났다고 할 수도 없다.

카이로의 젊은 행동가들은 무바라크의 퇴진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자유라는 게 단지 그를 다른 인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정의, 부자들에게 너무나 가증스럽게 빼앗긴 민중들의 부의 회복, 그리고 수십년간의 고문과 독재에 책임있는 자들의 처벌이다. 이번 시위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학살한 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술레이만과 그 동료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던 바로 그 감옥으로 보내져야 한다. 혁명과 정의가 글자 그대로 실현되려면 최소한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술레이만의 고문실은 젊은 활동가들을 다시 고문하는 곳으로 쓰일지 모른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미국 웬트워스공대 교수·사회정치학

*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누구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어머니가 이집트 출신으로, 2000~2001년 전남대 5·18연구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연구한 바 있다. 저서 <신좌파의 상상력>과 <정치의 전복>이 국내에서 번역됐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