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기자의 이집트 통신]
예언자 무함마드 탄생일 휴일이었던 15일 낮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전날 발표된 군부의 시위 금지 명령에 따라 아침부터 경찰력이 투입돼 광장과 거리를 봉쇄했다. 이틀 전까지도 인파로 넘쳤던 타흐리르의 원형 광장 안에는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때 광장에서 쫓겨났던 경찰은 다시 통제의 중심에 섰다. 그들은 시민들이 광장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주변에서 사진을 찍거나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까지 제지하려 했다. 불과 나흘 만에 혁명의 공기가 모두 휘발돼 버리고 카이로는 일상으로 돌아간 것일까?
13일과 14일엔 일부 하급 경찰관들이 타흐리르 광장을 집단으로 찾아와 ‘임금과 대우를 개선해 달라’‘시민들과 경찰은 뭉쳐야 한다’는 시위를 벌여 시민들의 눈총을 받았다. 지난 30년 동안 ‘무바라크의 호위대’로 시민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던 경찰이 혁명 뒤 가장 먼저 생존권을 위한 집단 시위를 벌인 것이다.
얼굴이 두껍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경찰의 이런 행동에 대해 타흐리르 광장 부근에서 만난 경찰 장교 아흐메드(37)에게 물었다. “하급 경찰의 월급은 600~700이집트 파운드(12~14만원)에 불과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경찰이 부패했던 것은 임금이 너무 낮은 것과 관련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경찰을 악용한 장기 독재→민중의 분노와 시위→경찰의 강경 진압→민중의 희생과 혁명이라는 과정을 보면, 이집트의 민중 혁명은 한국의 4·19혁명을 빼닮았다. 경제 발전 수준이 낮고 중간층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아직 2차 혁명인 6월 항쟁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면 이집트의 이번 혁명도 한국처럼 반혁명(5·16쿠데타)으로 부정될 가능성이 있는가?
우연히도 한국과 이집트의 민주화 혁명을 모두 현장에서 지켜봤다는 독일의 ‘자유를 위한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의 중동·북아프리카 책임자 로날트 마이나르두스 박사는 “이번 혁명에서 보여준 민중의 힘이 6월 항쟁 때보다 더 강력했기 때문에 노태우 같은 과도기는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광장에서 북쪽으로 가자, 이곳은 경찰이 허용했는지 작은 기념탑 앞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둘러싼 것은 이번 혁명에서 희생된 이들의 영정이었다. 대부분 혁명에서 그렇듯 주요 희생자들은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다. 영정들을 돌아본 한 여성은 “이집트 민중은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광장에서 서쪽으로 나와 나일강 위에 놓인 카스르 알 닐 다리에 이르니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벗겨지거나 낙서가 적힌 다리 난간에 새로 푸른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지난 주말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결성돼 며칠 사이에 전국에서 1만명 이상이 가입했다는 청년단체 ‘이집트를 깨끗하게’회원들이었다. 대학생 니하(19)는 “이번 혁명에 동의하지만 우리가 계속 시위만 할 수는 없다”며 “내 스스로 페인트를 사서 다리 난간을 칠함으로써 내 나라를 더 좋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카이로엔 거센 모래 바람이 불었다. 모래 바람이 일어날 때마다 뭔가가 넘어지거나 떨어지거나 날아갔다. 과연 내일이면 깨끗하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이집트에 쾌청한 날이 될까? 내일도 오늘처럼 시야를 불투명하게 하는 모래 바람이 계속 불까? che@hani.co.kr
광장에서 서쪽으로 나와 나일강 위에 놓인 카스르 알 닐 다리에 이르니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벗겨지거나 낙서가 적힌 다리 난간에 새로 푸른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지난 주말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결성돼 며칠 사이에 전국에서 1만명 이상이 가입했다는 청년단체 ‘이집트를 깨끗하게’회원들이었다. 대학생 니하(19)는 “이번 혁명에 동의하지만 우리가 계속 시위만 할 수는 없다”며 “내 스스로 페인트를 사서 다리 난간을 칠함으로써 내 나라를 더 좋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카이로엔 거센 모래 바람이 불었다. 모래 바람이 일어날 때마다 뭔가가 넘어지거나 떨어지거나 날아갔다. 과연 내일이면 깨끗하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이집트에 쾌청한 날이 될까? 내일도 오늘처럼 시야를 불투명하게 하는 모래 바람이 계속 불까?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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