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 개관
경찰발포 시위대 2명 사망…1천명 “총리 퇴진” 농성
‘민주-반민주’ ‘수니-시아파’ 갈등 얽혀 사우디 등 촉각
미 해군 5함대 사령부 주둔 등 ‘지정학적 요충지’ 주시
‘민주-반민주’ ‘수니-시아파’ 갈등 얽혀 사우디 등 촉각
미 해군 5함대 사령부 주둔 등 ‘지정학적 요충지’ 주시
튀니지에서 이집트를 거쳐온 민주화 열풍에 휩싸인 바레인에서 시위대가 도심 광장을 점거하고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바레인의 타흐리르’가 체제 변화의 진앙이 될지, 주변 왕정국가들이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14·15일 거리에 나선 시위대 중 1000여명이 수도 마나마 중심가의 펄(진주) 광장에서 노숙농성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광장 점거는 최근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몰아낸 이집트 청년들의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 농성을 본뜬 것이다. 시위대는 16일에도 사흘째 시위를 이어갔으며, 경찰은 헬리콥터를 띄워 이날 펄 광장에서 열린 시위 사망자 장례식을 감시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시위대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사람을 모으고 소식을 전파하는 것까지 튀니지와 이집트 청년들을 따라하고 있다. <에이피>는 이제 펄 광장이 폭발하는 아랍 민심의 중심지가 됐다고 보도했다.
시위가 예고되자 지난주 가구당 2660달러(약 298만원)의 보조금을 뿌리며 민심 무마를 시도했던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61) 국왕은 직접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마드 국왕은 15일 “우리의 귀중한 두 아들의 죽음을 애도한다”며, 경찰의 발포로 시민들이 숨진 것에 대한 진상 조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1971년 바레인이 영국에서 독립한 뒤 40년간 집권하고 있는 ‘세계 최장수 총리’ 칼리파 빈 살만 알칼리파(76)의 즉각 사임을 요구해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바레인 상황은 튀니지와 이집트를 지나온 민주화 바람의 동진을 알린다. 하지만 면적이 750㎢에 불과한 섬나라로 서울(605㎢)과 비교될 정도인 바레인의 정정에 이목이 쏠리는 더 큰 이유는 지정학적 맥락에 있다. 주변의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카타르·오만도 모두 왕정국가인데, 이번 시위는 민주화 불꽃이 왕정체제로까지 튀었다는 의미가 있다.
바레인이 이슬람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교차점이라는 사실도 주목 대상이다. 시위의 주요 원인은 무슬림 인구 중 3분의 1에 불과한 수니파가 시아파의 정치·경제적 입지를 좁히고 외국의 수니파 인구를 들여오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내각의 80%를 수니파 왕실이 차지하는 등 입헌군주제가 명목뿐이라는 불만도 높다. 최고의 땅부자로 알려진 칼리파 총리는 국왕의 아저씨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2만달러에 가깝지만 빈국인 튀니지와 이집트의 봉기가 쉽게 전파된 데에는 이런 구조가 있다.
결국 바레인의 상황은 아랍세계의 민주-반민주와 수니-시아파라는 대립 구조가 중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레인을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영토로 보는 시아파 국가 이란과, 동부 석유지대의 시아파 인구를 신경쓰는 수니파 국가 사우디가 중동의 양대 강국으로서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레인에 해군 5함대 사령부를 두고 이란을 겨누는 미국도 노심초사하는 눈치다. 미국 국무부는 15일 바레인 국왕의 시위 진압 진상 조사 방침을 환영하면서 “(정부와 시위대) 양쪽은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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