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협정’ 등 통해 특권 누려
“부끄러운 공존” 지적 잇따라
“부끄러운 공존” 지적 잇따라
“너무 끔찍하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시민들을 향한 용인할 수 없는 폭력의 사용이다.”(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69) 국가 지도자가 반정부 시위대 진압에 군용 헬기와 기관총까지 동원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21일(현지시각) 인권을 대표한다는 유럽의 두 선진국 지도자가 내놓은 비난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불과 얼마 전까지 세계 최장수 독재자 중 한명인 카다피와 밀월을 즐기며, 리비아의 인권 현실엔 애써 눈을 감아왔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22일 보도했다.
미성년 성매매 의혹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베를루스코니는 카다피와 신뢰가 두텁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2009년 카다피와 비밀협정을 맺었다. 이탈리아가 리비아에 1911~43년 식민 지배 보상금으로 70억달러(약 7.8조원)를 지급하는 대신, 리비아는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하는 북아프리카 이민 행렬의 단속을 강화하기로 약속했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실제 이민자들의 관문인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섬으로 들어온 이민자는 2009년 3만7천명에서 지난해 400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정치, 경제적 망명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이민자를 무조건 단속한 탓에 로마 교황청과 인권단체들의 비난의 대상이었다.
비밀협정에 따라 이탈리아의 대리비아 경제 진출도 활발해졌다. 이탈리아는 리비아의 사회간접자본 프로젝트 수주 시 특혜를 누렸다. 2009년 이탈리아는 리비아에 170억달러어치를 수출해, 리비아의 최대 무역파트너로 등장했다. 리비아는 세계 최고 축구클럽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부터 방산업체인 핀메카니카에까지 투자했다. 또 리비아의 국부펀드인 ‘리비안투자청’은 이탈리아 최대은행인 유니크레디트의 지분 7.5%를 사들였다. 대신 리비아는 이탈리아의 최대 원유수출국 지위를 얻었다. 이탈리아 좌파 민주당 소속 다리오 프란체스키니 의원은 “베를루스코니는 수년 동안 카다피와의 관계에서 특권을 누려왔다”고 비난했다.
영국도 리비아가 2003년 팬암기 폭파 사건 등에 거액을 배상하자 12년 동안 중단된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비피와 로열더치셸 등 석유 업체를 중심으로 리비아에서 많은 이권을 챙겼다. 또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앞장서 2008년 리비아와 8500만유로어치의 무기 판매계약을 성사시켰다.
리비아 태생의 만수르 엘키키야 텍사스대 교수는 “카다피는 유럽 국가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줬고, 유럽 국가들은 부끄럽게도 (카다피와) 공존해왔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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