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미디어 전쟁서 승리하는 쪽이 나라 맡을 것”
국영방송 “반정부군 항복”…자유언론 “혁명 동참”
국영방송 “반정부군 항복”…자유언론 “혁명 동참”
보라색 히잡을 쓴 여성 앵커가 나와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또 외신들을 향해선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배경 화면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평온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윽고 항복한 반정부군한테서 압수했다는 벌컨포가 나온다. 체포된 반정부군은 “리비아의 반역자들을 도왔다”고 고백한다.
<알자지라>가 2일 전한 리비아 국영 <자마히리야> 방송 보도의 일부다. 트리폴리에서 결사항전 태세인 무아마르 카다피는 여전히 국영방송을 자신의 ‘스피커’로 활용하고 있다. 관영 방송과 신문은 카다피 찬양 일색이다. 하지만 트리폴리를 벗어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민주화 시위대가 장악한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선 <자유 리비아>란 라디오 방송국이 등장했다. 허름한 건물에 열악한 방송 시설을 갖췄지만, 진행자와 엔지니어, 2명의 자원봉사자 등은 진실을 알린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찼다. 이들은 민주화 시위의 진행 상황을 리비아 전역에 송출한다. 진행자인 라디 이브라힘은 <알자지라>에 “지금 트리폴리에선 여기서 일어난 봉기가 실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카다피가 통제하는 지역과 반정부 시위대가 ‘해방’시킨 지역에서 미디어는 전혀 다른 색깔로 존재한다. <알자지라>는 “트리폴리와 리비아 동부지역 간 미디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반정부 시위대의 손에 넘어간 리비아 동부의 바이다에서도 ‘녹색산으로부터 라디오 자유리비아’란 방송국이 세워졌다고 <비비시>(BBC)가 전했다. 이 방송국은 청취자들에게 “혁명에 동참하라”고 호소하는 방송을 간헐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벵가지에선 방송뿐 아니라 <리비아>란 일간 신문도 창간됐다. 신문 제호 옆엔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승리하거나 죽을 뿐이다’란 문장이 새겨져 있다. 카다피에 대한 저항의 뜻을 담은 이 글귀는 이탈리아 식민 통치 기간 리비아 저항 지도자 우마르 무크타르가 남긴 말이다. 신문은 주로 민주화 시위 현황과 카다피에 맞서 숨진 순교자 얘기 등을 다룬다. 벵가지에 있는 관영 일간 <쿠리나>도 시위대가 접수하면서, 반카다피 미디어 진영에 합류했다.
카다피 정권은 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15일 이후 인터넷을 차단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프록시서버’를 이용해 인터넷 차단을 우회한다. 시민기자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등을 통해 시위 소식을 실시간 외부로 전파한다. <뉴욕 타임스>는 “아마추어 시민기자들이 찍은 시위 참가자들의 주검이나 부상자 사진과 동영상은 국영 텔레비전의 깔끔하고 전문적인 영상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라며 “이번 미디어 전쟁에서 승리하는 쪽이 아마 나라를 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다피의 손이 닿지 않는 리비아 곳곳에서 ‘언론 자유’란 꽃이 피고 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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