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시민들 극과 극
카다피 지지자 수천명 “죽을 준비 돼있다”
함락직전 반군 한숨돌려 “사르코지 만세”
카다피 지지자 수천명 “죽을 준비 돼있다”
함락직전 반군 한숨돌려 “사르코지 만세”
지중해의 미군 함상에서 날아온 미사일이 지축을 흔든 19일 밤(현지시각),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시민들은 ‘올 게 왔구나’라며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지도자의 열혈 추종자들은 주눅들지 않고 그의 병영식 관저인 바브 알아지지야로 모여들었다. 경비병들은 통제지역 안으로 지지자들을 들여보내 그 수가 수천명에 이르렀다.
리비아 정부의 초청으로 트리폴리에 온 외신기자들은 버스로 바브 알아지지야로 안내됐다. ‘인간 방패’를 자원한 카다피 지지자들은 지도자와 함께 죽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내보였다. 아랍어 여교사 옴 압델 카디르는 “우리 지도자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외국 기자들에게 말했다. 카디르는 여섯 아들 모두 카다피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카다피 지지자들이 바브 알아지지야로 모인 것은 1986년 카다피를 제거하려는 미군의 맹폭으로 100여명이 숨진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엘도라도’라는 작전명의 공습으로 15개월 된 카다피의 양딸도 숨을 거뒀다. 미군의 미사일 공격은 공군본부가 들어 있는 동부의 마테이가 기지 등지에 20일 새벽까지 이어져, 트리폴리의 밤공기는 미사일의 폭음과 방공포의 어지러운 궤적으로 가득 찼다. 트리폴리도 이제 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온 것이다. 리비아 정부군 대변인은 공습과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 48명과 부상자 150명의 대부분이 어린이라며, ‘서구의 부도덕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트리폴리에서 1000여㎞ 동쪽으로 떨어진 제2의 도시로 반정부 세력의 수도 격인 벵가지는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패주 일보직전이던 반정부군에게 다국적군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벵가지는 파죽지세로 동진한 정부군이 19일 아침 중심가까지 진출하면서 꼼짝없이 함락당할 처지였다. <뉴욕 타임스>는 정부군 탱크들이 벵가지 시내의 요충인 한 다리에까지 도달했었다는 목격담을 전했다. 이 다리는 반정부 세력 대표기구인 국가평의회가 청사로 쓰는 법원에서 불과 3㎞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반정부 세력은 시내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화염병을 만들며 시가전에 대비했다.
그러나 다국적군 개입으로 정부군이 시 바깥의 남서쪽에 있는 교두보로 퇴각하면서 반정부군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다국적군 개입 소식을 접한 이들은 “사르코지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프랑스 전투기의 공습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군용차량과 주검 14구가 벵가지 인근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주검들은 정부군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벵가지 의사들이 지난 18일부터 정부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94명이 숨졌다고 밝히는 등 반정부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19일 “리비아 민간인들의 안전이 크게 우려된다”며 “모든 당사자들은 전투원과 민간인의 구분과 인도주의 조직의 안전한 현장 접근을 원칙으로 하는 국제인권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