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민주화 상황
살레 대통령 “내전” 경고
시위대-정부군 수도 대치
시위대-정부군 수도 대치
‘아랍의 봄’이 홍해를 건널 수 있을까?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해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에서 가로막힌 민주화 바람이 아라비아반도에 상륙할 수 있을지, 예멘이 그 시험대에 섰다. 예멘에서 민주화 혁명이 성공한다면, 군대를 파견해 바레인의 ‘민주화 싹’을 자른 이웃 사우디아라비아마저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
33년간이나 예멘을 통치해온 알리 압둘라 살레(69) 대통령은 거센 퇴진 압박에 초강수로 버티고 있다. 살레는 22일엔 “(예멘이) 피 튀기는 내전에 직면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나선 데 이어, 23일엔 여당의원들만 참석한 의회 특별회기를 소집해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보장하는 비상사태법을 통과시켰다. 21일 최정예 1기갑사단장을 비롯한 3명의 군 장성과 고위 관리들이 줄줄이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하고 나서는 등 최근 민주화시위가 전환점을 맞게 되자, 살레는 연말까지 명예퇴진을 보장받기 위한 양보안을 내놓았다가 반정부세력에 거부당하자 강경대응으로 급선회했다. 이미 그의 아들이 이끄는 공화국수비대와 이탈한 군대 사이의 충돌이 시작되면서, “예멘이 내전으로 치달은 리비아의 길로 갈지, 아니면 군부가 등을 돌리면서 민주화 혁명이 성공한 이집트의 자취를 밟을지 의문”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살레가 더욱 궁지에 내몰리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처럼 쫓겨날 수 있겠지만, 계속 버티기에 나선다면 예멘은 리비아보다 복잡한 양상의 내전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21~22일 예멘 곳곳에서 그런 징후가 나타났다. <로이터> 통신은 남부 해안도시 무칼라에 있는 대통령 별장에서 공화국수비대와 이탈한 정부군 사이의 교전으로 한 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수도 사나와 호데이다 공군기지에선 시위대 편에 선 군대의 탱크·무장차량과 공화국수비대가 대치했다. 북부 사다주에선 민주화 시위대 지지를 선언한 시아파 무장세력과 정부군의 충돌로 7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이런 혼란의 근저엔 민주화 요구, 남예멘 분리독립 운동, 알카에다, 이슬람 신정 추구 등 다양한 세력의 갈등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민주화 시위가 번질까봐 예멘을 좌불안석으로 지켜본 이웃 사우디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도 예멘의 복잡한 정치지형 때문이다. 살레는 21일 사우디에 지지를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 친서엔 “나의 몰락이 아라비아반도를 더욱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는 ‘경고’도 담겨 있었다고 미국 민간 정보분석 기관인 ‘스트랫포’가 전했다. 지난 14일 바레인 왕정의 요청으로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1000명의 군대를 파견했던 사우디가 예멘의 요청은 거부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을 지지했고, 리비아에선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해 군사적 개입까지 주도한 미국이 친미 정권인 예멘에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22일 알카에다의 예멘 지부가 정치적 불안정을 틈타 발호할 수 있다고 우려했을 뿐, 살레의 퇴진엔 침묵했다고 <에이피>가 전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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