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군, 라스라누프 재탈환
후진타오, 사르코지에 정전 촉구
후진타오, 사르코지에 정전 촉구
외교전의 수장인 외무장관마저 망명하는 등 외교전에선 거의 완패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가 지상전에선 다국적군의 공습 이후 처음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영국 외무부는 30일 밤 “무사 쿠사가 오늘 그의 자발적 의지 아래 튀니지를 거쳐 영국으로 왔다. 그는 국제적으로 리비아를 대표하는 외무장관직을 사임하겠다고 우리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쿠사는 지난 19일 다국적군의 공습 개시 이후 처음 투항한 리비아의 거물급 인사다. 반정부 시위 초반 내무장관과 법무장관에 이어 국제사회에서 ‘입’ 노릇을 해온 유엔 주재 대사까지 줄줄이 카다피에게 등을 돌리긴 했지만, 쿠사의 망명은 또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쿠사는 2009년 외무장관이 되기 전까지 15년 동안 리비아의 해외정보부장을 지냈다. <에이피>(AP) 통신은 “카다피 정권은 쿠사의 망명으로 권력 핵심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고 보도했다. 카다피의 핵심 측근인 그는 1988년 270명의 사망자를 낸 팬암기 폭파 테러의 배후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론 2003년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 등을 조건으로 리비아를 국제무대에 복귀시킨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만약 투항하지 않으면 전쟁범죄로 국제형사재판소에 세워질 수 있다는 서구의 경고가 카다피 정권 핵심 인사의 이탈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영국은 지난 며칠 새 정보기관을 통해 무사와 계속 접촉해 왔다. 영국의 잭 스트로 전 외무장관은 <비비시>(BBC) 방송에 “쿠사의 망명은 카다피 반대편으로 무게중심을 쏠리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외무장관마저 잃었지만, 다국적군의 공습 이후 처음으로 29~30일 반격을 꾀해 반군이 점령했던 빈자와드와 라스라누프를 탈환했다. 카다피군이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트까지 진격해온 반군을 이틀 새 동쪽으로 160㎞나 밀어낸 것이다. <에이피> 통신은 “카다피군은 다국적군의 공습 목표가 되기 쉬운 탱크와 군용 무장차량을 놔둔 채 스포츠실용차(SUV)나 승용차, 미니밴으로 기동하는 새로운 전술을 채택했다”며 “다국적군은 반군과 카다피군의 식별이 더욱 어렵게 됐다”고 전했다. 반군은 다국적군의 공중지원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군에 견줘 조직력, 훈련, 무기 등에서 열악하다.
한편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들의 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역사는 무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대화 등 평화로운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며 “관련국들이 즉시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리비아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 결의 때 기권했던 중국은 다국적군 공습을 비판해오긴 했지만, 후진타오 주석이 직접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정전을 촉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류이근 기자,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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