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퇴진 명분만 동의 할 뿐 이력·생각은 제각각
‘전세역전 대책 마련’ 실패…국제적 지원 ‘명분 약화’
‘전세역전 대책 마련’ 실패…국제적 지원 ‘명분 약화’
지난 주말 리비아 반정부세력의 근거지인 동부 벵가지에선 반군 지도부 회의가 열렸다. 다국적군의 전폭적인 공습 지원에도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려던 자리였다. 회의는 그러나 반군 리더십을 둘러싼 지도부의 알력과 분열만 드러낸 채 별 소득이 없이 끝났다고 <뉴욕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과도국가평의회가 소집한 이 회의에는 명목상 반군 지도자인 압둘 파타흐 유니스 전 내무장관, 반군 야전사령관을 자임하는 칼리파 헤프타르 전 리비아군 장성, 반정부세력의 국방장관 자리를 꿰찬 오마르 하리리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그러나 의기투합은커녕 서로 반군의 주도권을 주장하며 불신만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국가평의회 정치위원장인 파티 바자는 <뉴욕타임스>에 “그들은 (회의에서) 어린애처럼 행동했다”고 꼬집었다.
과도국가평의회에 참가한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유일한 명분은 ‘카다피 퇴진’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경력과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 통합 지도부를 구성하다보니 서로 경계하며 겉돈다.
회의에 참가했던 인물들만 봐도 그렇다. 유니스는 카다피의 최측근 출신으로, 지난 2월에야 반군에 합류했다. 헤프타르는 애초 정부군 지휘관이었으나 1987년 차드 내전에 개입했다가 패배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최근 귀국했다. 하리리는 1969년 카다피의 쿠데타 동지였으나 1975년 카다피 정권 전복에 실패해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됐던 인물이다. 회의에선 헤프타르가 유니스와의 협력을 거부하다 지휘부에서 밀려났고, 헤프타르 지지자들과 반군 지도부 사이에는 서로를 비난하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회의를 지켜본 한 인사는 “카다피의 오랜 독재 탓에 그런 소란은 불가피하다”며 “그래도 최소한 서로에게 총을 겨누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과도국가평의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반군 대다수는 임시정부의 마무드 지브릴 총리와 알리 에사위 외무장관을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임시국가평의회를 정부라고 부르는 것조차 거부할 정도로 구심력이 없다. 전직 정부관료들이나 망명 인사들의 명망에만 의존해 지도권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반군의 지리멸렬한 교전과 지도부의 내분은 국제사회의 군사적 지원과 체제 인정의 명분마저 약화시키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3일 “반군이 누구인지, 배경과 동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 반군에 대한 무기 지원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정부세력이 카다피 퇴진 이후 리비아의 차기 리더십 구성과 국가 운영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군은 지난달 19일 시작된 다국적군의 공습에 힘입어 한때 무아마르 카다피의 고향인 중부 시르트까지 진격했으나, 최근 카다피 정부군의 거센 반격에 밀려 동부 브레가까지 퇴각한 상태다. 반군의 한 소식통은 3일 반군의 야전 지휘관들이 최고 군사지도부의 개편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리비아 반정부세력의 급조된 리더십이 안팎에서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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