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 민간인학살 반군쪽 소행 의혹
군사개입 명분 빛바래
주권침해 딜레마 빠져
“과도한 무력 자제해야” 분쟁 지역에 대한 유엔의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이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학살 방지와 민간인 보호라는 본디 의도와 어긋나는 결과를 낳거나 주권침해 논란을 빚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코트디부아르와 리비아에서 벌어진 내전은 그런 딜레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난해 11월의 대선 결과 불복으로 내전이 벌어진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유엔과 프랑스의 군사 개입으로 알라산 우아타라 당선자 쪽의 승리가 사실상 굳어가고 있다. 5일 행정수도 아비장을 점령한 우아타라 지지병력은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있으며,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은 지하벙커에 숨은 채 유엔과 ‘명예 퇴진’ 협상을 벌이면서 신변 보호까지 요청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그바그보는 프랑스 <엘세이>(LCI)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카미카제가 아니며 생명을 사랑한다”며 “평화를 되찾기 위해 나와 와타라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바그보는 그러나 자신이 항복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며,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승리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유엔의 개입으로 코트디부아르에서 ‘선거 정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최근 드러난 민간인 대량학살이 와타라 지지세력의 소행이라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도주의적 개입’의 정당성은 빛이 바랬다. 발레리 아모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장이 이끈 유엔 파견단은 5일 “지난주 서부 두에쿠에서 수백명이 살해됐으며, 매장지 한 곳에서만 200여구의 주검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와타라 반군이 이 곳을 점령한 직후였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와타라 쪽에 대량학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와타라 쪽은 학살 혐의를 부인하면서 유엔의 진상 조사에 동의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앞서 지난 1일 국제적십자사는 두에쿠에서 8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집계했으나, 와타라 쪽은 사망자 수가 160여명이라고 반박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5일 “와타라가 집권한다 해도 그를 지지한 무장세력의 실체에 대한 물음표가 붙는데다 외국군대의 도움을 받은 데 대한 적법성 논란으로 코트디부아르의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리비아 사태에 대한 다국적군의 군사개입도 ‘민간인 보호’를 위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넘어 ‘반군 지원’과 ‘카다피 축출’로 확대되면서 나토 내부에서조차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아프리카 연합(AU)의 테오도로 오비앙 은게마 의장은 5일 “아프리카는 외부 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코트디부아르와 리비아 사태에 대한 외국군의 개입을 비난했다.
<뉴욕 타임스>는 6일 “두 나라에 대한 유엔의 이례적이고 과감한 무력개입은 인도주의 문제에 대한 유엔의 근본적인 정책변화의 일부라는 분석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유엔의 한 고위관리는 이 신문에 “코트디부아르에 대한 조처는 리비아 군사개입으로부터 심리적 고무를 받은 것이며, ‘어떤 경우엔 개입이 정당하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지정학자 조지 프리드먼은 5일 민간전략분석기업 ‘스트랫포’ 웹사이트에 실은 칼럼에서 “종래의 ‘국가이익 추구’ 전쟁과 ‘이념 확산’ 전쟁에 더해, 2차 대전 이후 ‘인도주의 전쟁’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며, 인도주의 전쟁은 분쟁 당사자 중 어느 일방을 견제하거나 지지하는 전투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유엔이 지정한 중립적 군대의 평화유지활동(PKO)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런 군사개입이 유엔헌장이 규정한 국가주권 및 자위권 보장과 위배된다는 것. 기존의 코소보, 소말리아, 수단이나 지금의 리비아처럼 내전에 개입할 경우 ‘도덕적 개입’이라는 명분과 ‘주권 침해 금지’라는 규정이 상충된다. 프리드먼은 이런 모순의 해법으로 ‘독재자의 (퇴로를 열어주는) 조건부 퇴진’과 ‘과도한 무력개입 자제’를 두 축으로 하는 ‘완만한 개입’을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주권침해 딜레마 빠져
“과도한 무력 자제해야” 분쟁 지역에 대한 유엔의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이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학살 방지와 민간인 보호라는 본디 의도와 어긋나는 결과를 낳거나 주권침해 논란을 빚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코트디부아르와 리비아에서 벌어진 내전은 그런 딜레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난해 11월의 대선 결과 불복으로 내전이 벌어진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유엔과 프랑스의 군사 개입으로 알라산 우아타라 당선자 쪽의 승리가 사실상 굳어가고 있다. 5일 행정수도 아비장을 점령한 우아타라 지지병력은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있으며,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은 지하벙커에 숨은 채 유엔과 ‘명예 퇴진’ 협상을 벌이면서 신변 보호까지 요청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그바그보는 프랑스 <엘세이>(LCI)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카미카제가 아니며 생명을 사랑한다”며 “평화를 되찾기 위해 나와 와타라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바그보는 그러나 자신이 항복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며,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승리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유엔의 개입으로 코트디부아르에서 ‘선거 정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최근 드러난 민간인 대량학살이 와타라 지지세력의 소행이라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도주의적 개입’의 정당성은 빛이 바랬다. 발레리 아모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장이 이끈 유엔 파견단은 5일 “지난주 서부 두에쿠에서 수백명이 살해됐으며, 매장지 한 곳에서만 200여구의 주검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와타라 반군이 이 곳을 점령한 직후였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와타라 쪽에 대량학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와타라 쪽은 학살 혐의를 부인하면서 유엔의 진상 조사에 동의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앞서 지난 1일 국제적십자사는 두에쿠에서 8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집계했으나, 와타라 쪽은 사망자 수가 160여명이라고 반박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5일 “와타라가 집권한다 해도 그를 지지한 무장세력의 실체에 대한 물음표가 붙는데다 외국군대의 도움을 받은 데 대한 적법성 논란으로 코트디부아르의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리비아 사태에 대한 다국적군의 군사개입도 ‘민간인 보호’를 위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넘어 ‘반군 지원’과 ‘카다피 축출’로 확대되면서 나토 내부에서조차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아프리카 연합(AU)의 테오도로 오비앙 은게마 의장은 5일 “아프리카는 외부 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코트디부아르와 리비아 사태에 대한 외국군의 개입을 비난했다.
<뉴욕 타임스>는 6일 “두 나라에 대한 유엔의 이례적이고 과감한 무력개입은 인도주의 문제에 대한 유엔의 근본적인 정책변화의 일부라는 분석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유엔의 한 고위관리는 이 신문에 “코트디부아르에 대한 조처는 리비아 군사개입으로부터 심리적 고무를 받은 것이며, ‘어떤 경우엔 개입이 정당하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지정학자 조지 프리드먼은 5일 민간전략분석기업 ‘스트랫포’ 웹사이트에 실은 칼럼에서 “종래의 ‘국가이익 추구’ 전쟁과 ‘이념 확산’ 전쟁에 더해, 2차 대전 이후 ‘인도주의 전쟁’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며, 인도주의 전쟁은 분쟁 당사자 중 어느 일방을 견제하거나 지지하는 전투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유엔이 지정한 중립적 군대의 평화유지활동(PKO)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런 군사개입이 유엔헌장이 규정한 국가주권 및 자위권 보장과 위배된다는 것. 기존의 코소보, 소말리아, 수단이나 지금의 리비아처럼 내전에 개입할 경우 ‘도덕적 개입’이라는 명분과 ‘주권 침해 금지’라는 규정이 상충된다. 프리드먼은 이런 모순의 해법으로 ‘독재자의 (퇴로를 열어주는) 조건부 퇴진’과 ‘과도한 무력개입 자제’를 두 축으로 하는 ‘완만한 개입’을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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