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요원 등 335명 철수·무인공격기 사용중단 요구
살해·오폭 등 잇따른 현지인 희생에 군부 불만 폭발
살해·오폭 등 잇따른 현지인 희생에 군부 불만 폭발
파키스탄 군부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등의 대폭 철수와 무인공격기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삐걱대던 양국 관계의 균열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미국으로서는 대테러전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를 잃을 위기에 빠진 게 된다.
<뉴욕 타임스>는 파르베즈 카야니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이 최근 미국 쪽 요원 규모의 감축과 무인공격기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양국 관리들을 인용해 11일 보도했다. 카야니 총장이 요구한 감축 규모는 335명으로, 중앙정보국 요원들과 계약직원들, 미군 특수요원들이 대상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파키스탄 주재 중앙정보국 요원 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파키스탄 군부는 국경수비대를 훈련시키는 미군 특수요원 120명 중에서는 25~40%를 줄이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년간 대테러전에 협력해 온 파키스탄 군부의 싸늘한 태도는 중앙정보국 직원의 현지인 사살에서 비롯됐다. 동부 라호르의 미국 영사관 직원 직함을 지녔던 레이먼드 데이비스는 지난 1월 오토바이 강도를 만났다며 권총을 발사해 현지인 2명을 사살했다. 그런 행위가 정당방위였는지 시비가 이는 가운데 데이비스가 중앙정보국 계약직원인 사실이 드러났다. 파키스탄은 미국과 옥신각신한 끝에 지난달 16일 유족들에게 미국 쪽 돈 230만달러(약 25억원)가 지급된 뒤 그를 석방했다.
하지만 석방 뒤에도 파키스탄인들의 반발이 심해 양국의 감정은 풀리지 않았다. 파키스탄 군부는 이전부터 미국이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는 불만을 품어왔다. 또 미국 요원들의 활동에는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대의 알카에다와 탈레반 토벌뿐 아니라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를 통제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미국은 파키스탄 군과 정보국이 대테러전에서 무능하다는 평가와, 그들 중 일부는 테러조직과 연루돼 있다는 의심을 공공연히 내비쳐왔다. 데이비스의 즉각 석방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가 되레 47일간 구금돼 파키스탄 정보국의 심문을 받자 중앙정보국은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무인공격기 사용 문제도 파키스탄 쪽의 불만을 폭발시켰다. 중앙정보국은 2009년 53건이던 무인공격기 공격 횟수를 지난해 118건으로 늘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전에 심혈을 기울이는 가운데 효과가 좋은 무인공격기에 더 의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폭으로 현지인들의 복수심만 키울 뿐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무인공격기가 무장세력 1명을 제거할 때마다 민간인 10명 이상이 희생된다고 추산한 바 있다.
특히 카야니 총장은 데이비스가 석방된 다음날 무인공격기가 북와지리스탄에서 40명을 사살한 데 격분했다. 그는 당시 성명에서 “원로들이 포함된 평화로운 모임이 부주의하고 냉혹한 군사공격 목표가 된 것에 크게 개탄한다”며 “그런 공격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11일에는 아흐마드 슈자 파샤 파키스탄 정보국 국장이 미국을 방문해 갈등을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관리들은 파샤 국장이 리언 파네타 중앙정보국 국장에게 요원 감축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중앙정보국이 이미 데비이스의 석방 조건으로 요원 감축에 합의했으며, 여러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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