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의약품 등 비살상용…영·프는 ‘군사고문단’ 파견
유엔 "인도주의 업무 모호"
유엔 "인도주의 업무 모호"
교착 상태에 빠진 리비아 전황에 마음이 다급해진 서구 국가들이 군수품과 군사고문단을 반군한테 제공하겠다고 앞다퉈 나서고 있다. 지상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준비절차라는 의구심을 키우는 조처들이다.
<에이피>(AP) 통신은 미국 정부가 20일 차량, 의약품, 방탄조끼, 쌍안경, 무전기 등 ‘비살상용’ 물자 2500만달러(약 270억원)어치를 리비아 벵가지에 근거를 둔 반군에게 제공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런 원조는 “리비아 정부로부터 공격 위협을 받고 있는 민간인들과 민간인 거주 지역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기가 빠졌더라도 지원 품목들은 모두 군수품이기 때문에 미국이 반군에 대한 군사원조를 본격화한 게 된다.
이날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부는 각각 군사고문단 10여명을 벵가지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영국이 군사고문단 20명을 보내겠다고 한 뒤 나온 발표다. 이냐치오 라 루사 이탈리아 국방장관은 “(리비아 반군의) 청년들은 대의를 위해 싸우려고 하지만 필요한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군사고문단 파견 이유를 설명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파리를 방문한 리비아 과도국가평의회의 무스타파 압둘잘릴 의장을 만나 “공습을 강화하겠다”며 반군에 대한 적극적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군사원조와 군사고문단 파견은 유럽연합(EU)이 인도주의적 임무 수행을 위해 1000여명 규모의 지상군을 리비아에 보낼 수 있다고 밝힌 뒤 1~2일 만에 나온 방침들이다. 공습으로는 리비아 정부군 격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주요국들이 지상전에도 조금씩 발을 들여놓는 조처들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엔이 인도주의적 임무를 명분으로 내건 지상군 투입이 군사작전과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게 됐다. 유럽연합은 유엔의 요청이 있을 때 지상군을 동원해 구호품 수송과 난민 보호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었다. 밸러리 에이머스 유엔 인도주의 업무 담당 사무차장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인도주의 업무와 군사작전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지 않도록 아주 유의해야 한다”며 유럽 국가들의 지상군 투입 방침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한편, 이날 정부군의 포위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리비아 미스라타에서 교전을 취재하던 서구 사진작가 2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사망자들 중 영국 출신의 사진작가 겸 다큐멘터리 감독인 팀 헤더링턴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들을 다룬 <레스트레포>로 지난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었다. 사진 공급업체인 게티이미지의 미국인 사진기자 크리스 혼드로스도 분쟁지역 취재로 유명한 인물이다. 둘은 취재활동 중 날아든 박격포탄에 희생됐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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