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알카에다 지부 및 연계조직
행방도 생사도 묘연…“빈라덴 없어도 조직 역동적”
2002년 3월, 수백명의 이슬람 전사들은 동부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의 험준한 산악지역을 탈출해 파키스탄의 남와지리스탄으로 향했다.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소탕하려는 미군의 토라보라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당한 이들은 곧 밀림과 계곡 지역인 와지리스탄의 샤카이 지역에 도착했다. 파키스탄의 자치 부족지역인 이곳은 사실상 중앙 권력이 미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지역 부족의 진흙 가옥을 2~3배의 임대료를 주고 빌리고 다시 은거지를 틀었다.
이 지역은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미국 중앙정보국 등의 지원을 받은 탈레반과 무자헤딘들이 이용하던 곳이었다.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54)도 그중 하나였다. 알카에다의 탄생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반복돼, 이들이 다시 미국의 추격을 피해 이 지역으로 숨어든 것이다.
그때 이후로 빈라덴은 샤카이 지역에 은신한다는 분석만 횡행할 뿐이다. 그의 행방에 대한 가장 최근의 전문은 2009년 12월 파키스탄에서 체포된 한 탈레반 대원의 주장이다. 그는 같은 해 1~2월 빈라덴과 접촉했다는 아프간 가즈니 지역 출신의 마흐수드 부족민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10월에는 한 나토 관리가 빈라덴이 파키스탄 정보기관 요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부터 제기된 빈라덴의 사망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1년 12월 한 탈레반 간부는 빈라덴이 폐합병증으로 죽어 12월15일 토라보라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묻혔다고 파키스탄의 <업저버>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빈라덴이 곧 손에 잡힐 것처럼 보였던 때는 연합군이 탈레반 소탕 작전을 대대적으로 재개하던 2009년 초였다. 연합군은 그해 3월 빈라덴이 파키스탄 치트랄 지구와 칼람 계곡에서 은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대대적 추격작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대의 연구진들은 위성정보 분석을 이용해, 그의 은신처로 파라치나르의 3개 가옥을 지목하기도 했다.
빈라덴이 한때 체포 직전에 몰렸다는 주장도 있다. 중앙정보국 빈라덴 추적팀장을 지낸 마이클 슈어는 지난 3월 발간한 저서 <오사마 빈라덴>에서 토라보라에서 체포 직전까지 갔으나, 미 행정부의 관료주의로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2010년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에서의 탈레반 소탕작전이 다시 교착상태로 빠지며 빈라덴의 행방에 대한 추측도 수그러들었다. 확실한 것은 빈라덴과 알카에다 본부가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지대에서 고립돼 있으나, 실질 역량을 가진 이슬람 전역 각 지부에 대한 통제권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빈라덴의 생존 및 그의 행방과 상관없이, 알카에다 조직의 역동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반테러 전문가 리어 패럴은 <포린 어페어스>에서 지적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