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예멘 군부 분열…협력서 ‘퇴진’으로 선회
‘반미’ 시리아 정권 붕괴땐 지역균형 깨져 ‘고민’
‘반미’ 시리아 정권 붕괴땐 지역균형 깨져 ‘고민’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아랍 세계의 민주화 시위 사태 이후 미국의 대중동 정책이 다시 고비를 맞고 있다.
예멘과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그동안 민주화 시위 이후 미국이 구사하던 ‘이중정책’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은 친서방 정권에 대해서는 개입과 타협을, 반미 정권에 대해서는 압력과 내부 붕괴를 구사해 왔다. 이미 전자는 이집트에서, 후자는 리비아에서 그 전형을 보여줬다. 이제 예멘을 ‘이집트 모델’로, 시리아를 ‘리비아 모델’로 다시 해결해야 하는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3월 말까지만 해도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정부 퇴진 시 대테러 전쟁이 위험해질 것이라며 공공연히 살레 정권의 퇴진을 반대했다. 하지만 살레 정권이 대테러 부대를 정권 방어에 동원하며, 대테러전 협력이 사실상 전면 중단되자 살레 퇴진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동안 걸프협력회의(GCC) 등 주변국의 중재안이 10여차례나 나온 것도 이런 미국의 방향 전환과 관련돼 있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살레의 퇴진 조건 중 그 아들과 조카들이 군 및 보안기구에 대한 통제권을 60일 동안 유지하기로 한 것은 대테러전 담보를 위한 것이다. 미국이 중시한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문제는 예멘에서도 이집트 모델이 성공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집트와 달리 예멘의 야권과 학생 세력들은 살레의 처벌을 배제한 퇴진안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권력을 승계한 이집트 군부와는 달리 예멘의 군부는 일부가 반정부 진영에 서는 등 내부 분열이 심하다. 알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조직 세력은 그 어느 중동 국가에서보다 극성이기도 하다.
지난 22~23일 최악의 유혈사태가 벌어진 시리아도 미국에 새로운 모색을 강요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성명에서 아사드를 강력히 비난하면서도 하야를 촉구하진 않았다. 리비아의 카다피를 대하는 태도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사드 정권의 붕괴에 이은 시리아의 권력 공백은 주변 지역 전체의 세력 균형을 무너뜨리는 등 영향을 가늠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터키와 접경한 시리아는 이 지역의 모든 무장세력들과 긴밀한 연계를 맺으면서도, 세력 균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신문은 “헤즈볼라와 하마스에 대한 시리아의 지원이 이스라엘과 서방을 분노케 하지만, 시리아는 레바논 내의 무장분파 투쟁을 통제하는 등 이들 무장그룹을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정학적 위상으로 보아 시리아에서 리비아식 해법을 추구했다가는 중동의 핵심 지역 전체가 불안정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
“누가 시리아에 개입할 것인가? 아무도 못한다. 오직 시리아의 길거리에서 결정될 것이다.” 오클라호마대의 중동연구소장인 조슈아 랜디스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밝힌 견해는 미국의 고민을 보여준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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