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이란·인도 견제 위해 아프간 탈레반 지원
미국엔 파키스탄이 전략 거점…잃으면 반미 벨트화
빈라덴 사살 후 미국-파키스탄 애증관계 더욱 증폭
미국엔 파키스탄이 전략 거점…잃으면 반미 벨트화
빈라덴 사살 후 미국-파키스탄 애증관계 더욱 증폭
“파키스탄이 알카에다에 대한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파키스탄을 폭격해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지 이틀 뒤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워싱턴을 방문중인 마무드 아메드 파키스탄 정보부(ISI) 부장을 불러놓고 을러댔다. 아메드는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을 반대하고, 탈레반 관리들을 매수해 오사마 빈라덴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미티지의 최후통첩 몇시간 만에 상황은 달라졌다. 본국에 있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군정 수장은 내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탈레반 공격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무샤라프는 한달 뒤 아메드를 정보부장에서 해임했다.
“우리처럼 무샤라프도 새로운 세계 현실에서는 그의 정보부 수장이 적들과 너무 밀접하다고 결론냈을 것이 틀림없었다. 어찌됐든 나는 무샤라프의 그 태도 변화가 9·11 이후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사태 전개라고 평가하고 있다.” 9·11 테러를 전후해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을 지낸 조지 테닛이 자서전 <폭풍의 중심에서>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당시 이 일화와 테닛의 평가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얽히고설킨 미국과 파키스탄, 탈레반, 알카에다의 관계를 말해준다. 또 그 이후 사태 전개도 시사한다. 실제로 미국은 파키스탄을 배후지로 삼고, 그 지원을 받아, 탈레반 정권을 한달 만에 무너뜨렸다. 이슬람주의 무장투쟁과 ‘테러와의 전쟁’의 배후지 구실을 동시에 하는 파키스탄의 ‘더블 게임’(이중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파키스탄의 모순된 역할은 1947년 건국 이후부터 역사적 배경을 갖는다. 인도의 종교분쟁으로 독립한 파키스탄은 인도와 전쟁까지 치렀고, 인도는 제일의 주적이 됐다. 그 과정에서 막강한 군부가 탄생했다. 파키스탄 정보부는 그 군부의 정보기관이다. 냉전 시절 친소련 노선을 걷던 인도를 견제하려고, 미국 역시 파키스탄 정보부와 협력했다.
파키스탄이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기꺼이 소련 반대편에 서서 이슬람 세력을 규합하는 중추적 구실을 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파키스탄으로서는 이슬람 혁명에 성공한 시아파 이란과 인도의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을 봉쇄하기 위해, 아프간에 수니파 정부를 세워야 하는 절박한 의도가 있었다. 미국도 이란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이 최적의 협력 대상이었다.
문제는 이슬람 세력을 규합하는 과정에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 통제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뒤 벌어졌던 아프간 내전(1996~2001년) 때 자국 출신 무장대원 8000명을 탈레반 세력에 지원하며 후원했다. 하지만 미국의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자, 이들은 아프간 접경지대인 와지리스탄 등 연방자치부족지역에서 파키스탄 탈레반이라 불리는 ‘테흐리크 탈레반 파키스탄’(TTP)을 2007년 결성했다.
이들은 연방자치부족지역에 이슬람공화국 설립을 목표로 삼고, 파키스탄 정부와 내전에 들어갔다. 2009년 봄에는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부네르를 함락하는 등 ‘파키스탄 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파키스탄 정부로서는 아프간 탈레반에 대한 미군의 공격에는 소극적으로 임하면서도, 자국 탈레반과는 적극적인 전쟁을 벌이는 복잡한 사태에 처해 있다. 파키스탄의 이중 게임은 사실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30년 이상이나 계속되는 아프간 전쟁이 남긴 복잡한 유산인 셈이다. 미국은 더 큰 딜레마에 빠져 있다. 알카에다 소탕을 위해 이 지역에서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이슬람주의 세력을 자극하지만, 철수할 경우 아프간은 물론이고 파키스탄도 미국의 통제권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다. 아프간-파키스탄(아프팍)을 잃으면 이란부터 파키스탄까지 ‘반미 이슬람 벨트’가 된다. 이는 걸프만과 아라비아해의 전략적 통제권 상실로 이어진다. 석유자원의 또다른 보고인 중앙아시아로 들어가는 접근도 봉쇄된다. 더구나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가진 이슬람 대국이다. 역설적으로, 아프간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에게 아프팍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미국과 파키스탄이 서로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애증관계는 오사마 빈라덴 사살 이후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는 빈라덴 이후 이슬람주의 세력의 향방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파키스탄 정부로서는 아프간 탈레반에 대한 미군의 공격에는 소극적으로 임하면서도, 자국 탈레반과는 적극적인 전쟁을 벌이는 복잡한 사태에 처해 있다. 파키스탄의 이중 게임은 사실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30년 이상이나 계속되는 아프간 전쟁이 남긴 복잡한 유산인 셈이다. 미국은 더 큰 딜레마에 빠져 있다. 알카에다 소탕을 위해 이 지역에서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이슬람주의 세력을 자극하지만, 철수할 경우 아프간은 물론이고 파키스탄도 미국의 통제권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다. 아프간-파키스탄(아프팍)을 잃으면 이란부터 파키스탄까지 ‘반미 이슬람 벨트’가 된다. 이는 걸프만과 아라비아해의 전략적 통제권 상실로 이어진다. 석유자원의 또다른 보고인 중앙아시아로 들어가는 접근도 봉쇄된다. 더구나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가진 이슬람 대국이다. 역설적으로, 아프간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에게 아프팍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미국과 파키스탄이 서로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애증관계는 오사마 빈라덴 사살 이후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는 빈라덴 이후 이슬람주의 세력의 향방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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