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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달러 들여 미 사설군사업체에 비밀리 의뢰
‘실전경험’ 군·경 출신 위주로…왕정 친위부대화
‘실전경험’ 군·경 출신 위주로…왕정 친위부대화
‘전쟁 사유화’의 첨병인 미국 사설군사업체 블랙워터의 창업자 에릭 프린스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용병부대를 창설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대는 소요 진압을 임무에 포함시켜, 민주화 바람에 휩싸인 중동에서 용병들이 시위 진압에 동원될 가능성을 열었다.
<뉴욕 타임스>는 프린스가 지난해 토후국 아부다비의 왕세자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실질적 통치자인 셰이크 무함마드 빈자예드 알나얀의 요청으로 용병 특수부대를 만들었다고 14일 보도했다. 800명이 정원인 이 부대의 현원 580명은 사막지대에 설치된 병영에서 미군 전역자 등한테 훈련을 받고 있다.
미국과 아랍에미리트 정부 관계자 및 프린스가 현지에 차린 업체 ‘리플렉스 리스폰시스’ 퇴직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프린스와 아랍에미리트는 지난해 봄부터 용병부대 설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실전 경험이 없는 자국군이 불만이던 아랍에미리트 정부 쪽은 5억2900만달러(약 5740억원)를 지급하고 특수부대를 만들기로 한다.
프린스의 회사는 좌익 반군이나 마약 조직과의 실전 경험이 많은 콜롬비아 군·경 출신들을 위주로 일당 150달러에 용병들을 끌어모았고, 아랍에미리트 정부로부터는 M16 소총과 박격포, 차량 등을 제공받았다. 이 부대에는 아프리카 각국에서 쿠데타와 독재자들의 정적 탄압에 앞장서 온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용병들도 가담했다.
양쪽은 계약서에 용병부대의 임무를 정보 수집, 도시지역 전투, 원자력 물질 경비, 인도주의 업무, “적 전투원과 설비 파괴” 등으로 나열했다. 특히 “군중 통제 작전”을 임무의 하나로 제시하면서 “화기를 지니지 않았지만 막대기나 돌멩이 등 즉석에서 마련한 무기를 든 군중”에 대한 작전을 계약에 써넣었다. 이는 국내 소요에 용병부대를 동원하겠다는 말로, 시위가 벌어진다면 용병부대를 왕정 보위에 이용하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집단 거주지에 모여 사는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출신 노동자들도 잠재적 치안 위협 세력으로 보고 있다. 또 유사시 이란이 점유해온 페르시아만의 무인도들을 용병부대를 동원해 탈환한다는 복안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프린스로서는 이번 계약이 용병산업을 또다른 경지로 끌어올린 셈이 됐다. 용병들을 각지의 분쟁 현장에 보내 정규군처럼 쓴다는 그의 구상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프린스가 만든 부대가 잘 운용되면 그와 함께 수십억달러를 들여 수천명 수준의 용병부대를 만들 방침이다.
그러나 블랙워터가 이라크에서 정규군처럼 행동하며 민간인들을 살상해 큰 논란을 빚은 사실을 아는 이들이 프린스의 사업을 바라보는 눈길은 곱지 않다. 프린스도 자신을 둘러싼 시비를 잘 알기에 계약서에도 이름을 넣지 않으며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콜롬비아 출신자들을 아랍에미리트로 데려오면서는 건설 노동자들로 신분을 꾸미고 부대 창설도 비밀에 부쳐왔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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