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가치 실현 목표…무바라크 퇴진 뒤 급성장
“여론조사 지지율에 신경쓰지 않는다. 여론조사는 대부분 한정된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지므로 꼭 진실을 반영하진 않는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휘장) 지도부의 후세인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자신감을 보였다. 오는 9월 이집트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최근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지지율 15%로 주요 정당 중 선두를 차지한 결과를 두고 한 말이다. 이날 이집트 과도정부는 무슬림형제단이 지난달 창당한 ‘자유정의당’을 공식 승인했다.
이집트 혁명 이후 무슬림형제단이 주목받고 있다. 오는 12월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거듭 밝히면서도, 9월 총선에선 전체 의석의 50% 확보가 목표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집권은 하지 않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영국의 식민통치 시기인 1928년 이슬람 학자 하산 알반나가 ‘진정한 이슬람 가치의 구현과 확산’을 목표로 창설했다. 자신을 찾아와 스승이 돼 주기를 청한 수에즈 운하의 노동자 6명이 창립 멤버였다. 이슬람의 존엄과 부흥을 내세운 무슬림형제단은 암울한 식민지 무슬림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병원과 학교를 세웠고, 재원 마련을 위해 기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창설 10년 만인 1938년에 조직원이 20만명, 다시 10년 뒤인 1940년대 말에는 200만명으로 급증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애초 정당이나 무장투쟁 조직이 아닌 종교·사회적 부흥운동으로 출발했다. ‘폭력적 수단’을 명시적으로 배제한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 이후 영국의 식민통치 반대 운동을 시작하면서 일부 조직원들이 무장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무슬림형제단의 기나긴 핍박의 역사는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를 중심으로 한 이집트의 청년 장교단이 무혈 쿠데타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세우면서 본격화했다. 범아랍 민족주의에 불을 지핀 나세르 혁명은 정교분리를 명시한 세속주의 원칙을 내세웠다. 이는 “개인과 가족, 공동체와 국가에 코란과 순나(이슬람 신행과 규범)의 정신을 부활시킨다”는 무슬림형제단의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1954년에는 나세르 전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불법단체로 낙인찍혔다. 이후 조직은 반세기 가까이 군부 정권의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의 영향력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 아랍 전역으로 퍼져나가 수많은 가지를 쳤다. 요르단의 최다 의석 정당인 이슬람행동전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이라크 수니파 정당연맹인 이라크이슬람당 등이 대표적이다.
무슬림형제단의 비폭력 노선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2005년 미국 외교관계협회는 “무슬림형제단은 과거 폭력을 사용하거나 지지했지만, 1970년대 이후 폭력을 거부하고 정치 참여를 모색해왔다”고 밝혔다. 그해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 조직원들은 ‘개인’ 자격으로 입후보해, 낮은 투표율과 부정선거 의혹에도 전체 의석의 20%(88석)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듬해 백악관의 대테러국은 2006년 “무슬림형제단은 그들의 이념이 아니라 폭력 옹호 때문에 우려스러운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친미 성향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위협할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떠오른 것에 대한 경계감이었다.
이제 무슬림형제단은 당당한 정당으로 깃발을 올렸다. 무함마드 무르시 자유정의당 대표는 최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슬람을 정당의 기본으로만 삼을 뿐, 세세한 일에까지 율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며 세속주의 원칙을 존중할 것임을 밝혔다. “우리는 독백이 아닌 대화를 원하며, 다른 정치세력과 함께 강력한 의회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그들의 목표와 다짐은 오는 9월 총선 이후 검증될 것이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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