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 유니폼 입어도…고물버스 타도 좋아
신생국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일체감과 정체성 형성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아프리카의 남수단은 건국 이튿날 곧바로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개최해 스포츠 무대에서도 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을 알리고 나섰다.
영국 <가디언>은 남수단 대표팀이 10일 케냐 프로축구팀 터스커를 안방에서 맞아 데뷔전을 치렀다고 보도했다. 수도 주바의 나일강변에 자리잡은 경기장은 관중석이 1600석에 불과해, 자국 대표팀의 첫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 중 수백명은 선 채로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장은 그나마 남수단에서 석유 개발에 뛰어든 중국과 말레이시아 업체가 후원해 잔디를 새로 깔고 조명도 달 수 있었다.
대표팀 구성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분리 전 수단 대표팀에서 뛴 4~5명을 불렀지만 수단 수도 하르툼 리그에서 뛰는 그들은 구단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인도 리그에서 뛰는 스트라이커 제임스 조지프 등은 자신들보다 훨씬 어린 조국의 부름에 불원천리 달려왔다. 북부 수단과의 내전에서 아버지를 잃은 저스틴 와니는 미드필더로 참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남수단 축구 대표팀은 고물 버스를 타고 경기장에 도착했다. 급조한 유니폼에서는 국기 문양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지만 국가대표 데뷔전의 감격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초대 감독 말리스 소로는 경기 전 “축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라며, 수십개 부족으로 구성된 남수단의 단결에 기여하면서 가급적 첫승을 챙기고 싶다고 말했다.
남수단 대표팀은 이날 골문 안으로 3골이나 밀어넣으며 첫 경기에서부터 골 풍년을 경험했다. 다만 2골이 자책골이라 1 대 3으로 패했다. 전 수단 국가대표 선수이자 인도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임스 조지프는 경기가 끝난 뒤 “첫 게임에서 져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젊다”며 “다음 경기에선 좀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표시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